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NBA 파이널 최종우승을 이끈 르브론 제임스(32). 그는 6월20일 스테판 커리를 앞세운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상대로 한 7차전에서 승리하자 코트 바닥에 엎드려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그에게는 눈물을 쏟아낼 만한 이유가 있었다.
클리블랜드 인근 애크론에서 태어난 그의 유년기는 불행했다. 16세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그는 평생 단 한번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그를 돌봐주던 할머니조차 그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면서 르브론은 10대 엄마와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다.
어린 시절 가장 무서웠던 것은 아침에 일어나 엄마를 깨웠을 때 엄마가 계속 살아서 내 옆에 있는지 여부였다. 엄마마저 잃고 싶지 않았다.
르브론 다큐멘터리 'More than a game'
생활고에 시달리며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12번을 이사해야 했고 엄마마저 삶의 의지를 잃으면서 그는 1년에 80일씩 학교에 결석을 하기도 했다.
그에게 유일한 행복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한 농구와 미식축구. 코트에 있을 때만큼은 누구보다 행복했다. 무엇보다 가장 안전했다.
항상 이사를 다녔기 때문에 친구를 사귈 수 없었고 괴롭힘과 폭력에 시달렸다. 그나마 운동을 할 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다. 코트를 떠나는 순간 안전이 보장되지 않았다.
‘More than a game'
그러던 중 르브론의 재능을 알아본 초등학교 미식축구부 동료의 아버지가 그를 키워주겠다는 제안했다. 그가 정상적인 가정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였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제시간에 학교에 가는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생활을 이때부터서야 경험할 수 있었다. 1년 후 개근상과 전과목 B이상을 받는 모범생이 됐다.
부모님이 항상 주위에 있고 형과 누나가 있는 일상은 믿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이분들이 없었더라면 난 아마 농구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욱이 르브론이 친정인 클리블랜드를 떠나 마이애미로 이적을 선언했을 때 클리블랜드 팬들은 그의 유니폼을 불태우는 등 큰 실망감을 드러냈다. 클리블랜드는 르브론 덕분에 2년 연속 준우승을 했지만 그의 이적 이후 다시 하위권으로 추락했다.르브론은 고교 졸업 후 수많은 러브콜을 받았지만 고향 팀을 선택했었다.
오하이오와 나의 관계는 농구 그 이상이다. 그러나 4년 전에 나는 이를 알지 못했다. 어린 선수들의 멘토가 돼서 이들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같이 만들어보고 싶다. 나는 집으로 되돌아간다.(I’m Coming Home)
이때부터 르브론은 확 달라진다. 개인 플레이보다 팀 플레이로 팀의 부흥에 일조한다. 2015-2016 시즌 클리블랜드는 NBA 사상 최초로 플레이오프 2라운드 만에 3점슛 77개를 성공시켰는데 이 가운데 46개가 르브론의 패스에서 나왔다.
혼자만 잘 하는 슈퍼스타가 아니라 경기를 조율하는 진짜 베테랑이 돼 돌아왔다. 멈추지 않는 그의 훈련과 그의 마음가짐은 팀 동료들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2015.2.13, ESPN
더욱이 이번 우승은 NBA 파이널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1승3패 열세를 뒤집고 이뤄낸 것. 당시 아무도 1대 3으로 뒤지고 있던 클리블랜드의 역전을 점치지 않았다.
경기 막판 체력 저하로 집중력이 흐트러진 라이벌 스테판 커리와의 대결에서도 완승을 거두며 르브론은 진정한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고교시절부터 '킹'이라 불렸던 르브론 제임스. 그를 이제 진짜 '왕'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아직 스테판 커리의 시대는 아니다. 르브론 제임스가 여전히 자신이 왕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스테판 커리, 아직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2016.6.20, Econom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