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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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정기국회 첫날인 9월1일 여당 의원들의 '국회의장실 점거' 사태가 빚어졌다. 새누리당 의원 80여명은 이날 정세균 국회의장 개회사에 반발해 국회 의사일정을 보이콧하고 의장실로 몰려가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이 경호원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튿날인 2일 까지 보이콧을 이어오다 이날 저녁 가까스로 정 의장과 국회 정상화에 합의했다. 여야는 이날 본회의를 열고 추가경정 예산안을 처리키로 했다.


이로써 국회 파행은 일단락 됐으나,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성'을 둘러싼 논쟁은 아직 남아 있는 상태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정 의장 개회사 내용을 문제 삼았다. 정 의장은 이날 개회사에서 우병우 민정수석 논란과 사드 배치 관련한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국회의장은 영어로 '스피커'(Speaker)입니다. 상석에 앉아 위엄을 지키는 '체어맨'(Chairman)이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스피커로 쓴소리 좀 하겠습니다.


(정세균 의장.2016.9.1.정기국회 개회사)




정 의장의 해당 발언은 다음과 같다.


우 수석 논란 관련



최근 우병우 민정수석과 관련한 논란은 국민 여러분께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한 일입니다. 국민의 공복(公僕)인 고위공직자, 특히 청와대 민정수석이라는 자리는 티끌만한 허물도 태산처럼 관리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은 실질적으로 검찰에 대한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당사자가, 그 직을 유지한 채, 검찰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을 국민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특권과 부패 없는 대한민국, 투명하고 청렴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법적 정비가 완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영란법에 이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의 신설이 바로 그것입니다.



정부의 ''사드 배치'' 태도 관련

최근 사드배치와 관련한 정부의 태도는 우리 주도의 북핵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사드배치의 불가피성을 떠나서 우리 내부에서의 소통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 과정이 생략됨으로 해서 국론은 분열되고, 국민은 혼란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응분의 제재는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남북이 극단으로 치닫는 방식은 곤란합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정 의장의 이같은 발언이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의장직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정현 대표, 정진석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의원들이 9월2일 국회의장실 복도에서 항의 농성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이정현 대표, 정진석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의원들이 9월2일 국회의장실 복도에서 항의 농성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정 의장은 자신의 정치 테러에 반드시 국민 앞에 사죄하고 자신의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2016.9.2.의원총회)



편향된 개회사로 20대 국회의 명예를 훼손한 정 의장은 국민 앞에 사죄하고 사퇴해야 한다.

(민경욱 새누리당 대변인.2016.9.1)


그러나 정 의장은 “(법안을) 날치기 한 것도 아니고, 나는 정치적 의도 없이 민심을 전한 것이다”라며 “내 말에 틀린 말이 있으면 지적해보라"고 논란을 일축했다.



과연 정세균 국회의장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일까?

 

현행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장은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당적을 가질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 의장도 의장직 당선 직후 더민주를 탈당했다.


하지만 국회법에는 국회의장 중립 의무와 관련된 직접적인 조항은 없다. 국회법에서는 단지 다음 3가지를 규정하고 있다.


-국회의장은 당적을 가질 수 없다 (20조2항)


-위원회에 출석은 할 수 있되, 표결에는 참가할 수 없다 (11조)


-의장은 국회를 대표하고 의사를 정리하며 질서를 유지하고 사무를 감독한다 (10조)


따라서 엄밀하게 따지면 정 의장이 국회의장으로서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법적 근거는 찾기 힘들다. 국회법에 국회의장의 중립 의무를 직접적으로 거론한 규정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살펴볼 헌법 조항이 하나 있다. 헌법 46조 2항이다. 이 조항은 국회의원의 본분과 책무를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



이를 토대로 논란이 된 발언들을 살펴보면,


우 수석 논란

우 수석의 비위와 직권남용 의혹에도 불구하고 그를 경질하지 않는 청와대를 향한 비판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정진석 원내대표, 김무성 전 대표 등 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우 수석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드 배치' 관련 정부 태도 

사드 관련 정부의 태도 지적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국민과 야당과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사드 배치를 강행하고 있다.

특히 정부의 일관성 없는 무원칙과 부실 대처가 사드 문제를 더욱 꼬이게 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최근 정부의 '제3후보지' 언급으로 경북 성주를 넘어 김천까지 반대 시위로 혼란이 증폭됐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개회사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사진=뉴스1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개회사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사진=뉴스1

다만, 정 의장이 여·야간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정치적 현안을 직접 언급한 데 대한 논쟁은 있을 수 있다.


우 수석 사퇴는 여당 의원 상당수도 공감하는 내용이지만 ‘공수처’ 신설은 야당이 추진하고 여당은 반대해온 사안이라 정치적으로 민감하다.

 

‘공수처’란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국민의당 등 야당이 설치를 추진하고 있는 수사 기관이다. 수사 대상은 공직자 및 대통령의 친인척이며, 부정부패와 권한남용을 방지하고 국가운영의 투명성과 공직에 대한 신뢰를 제공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새누리당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는 ‘공수처’ 설치는 권력분립원칙 위배, 국가소추권 이원화 등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또한, 비록 정 의장은 사드 배치 관련 정부의 태도를 비판한 것이지만 사드 배치 이슈 자체에 대한 여야 의견이 찬반으로 갈려 있는 상황이라 이 역시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해석될 수 있다.


사드 발언은 국가 의전서열 2위인 국회의장이 우리의 외교력을 축소시키고 

상대국가들에게 이용당할 수 있는 소지를 만든 것으로 굉장히 큰 실수를 한 것.

(신율 명지대 교수.2016.9.2.뉴스1)



하지만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를 대표하는 의장이 기계적 중립에 따라 아무런 의사표현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직무유기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국회의장은 일어나서 그냥 의사 방망이만 두드리는 기계가 아니지 않나.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뉴스1)


기술적 문제에 대해선 얘기할 여지가 있겠지만, 국회의장으로서 정부의 문제점에 대해 충분히 지적할 수 있는 일이다.

(김철근 동국대 교수.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