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자동차 개발을 인정한 적은 없다. 하지만 엘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말처럼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미국 언론은 애플을 무인차 시장을 주도할 5대 기업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한때 애플의 비밀프로젝트팀 직원 일부가 회사를 나가면서 포기설도 나왔지만 9월21일 애플이 영국 럭셔리 스포츠카 제조업체 맥라렌 인수를 추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반전. 과연 애플카 개발은 어디까지 온 것일까?
시작은 스티브 잡스의 꿈
잡스는 2008년 아이폰을 처음 공개할 때부터 자동차 개발을 생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키 드렉슬러 전 애플 이사회 이사는 2015년 한 콘퍼런스에서 “스티브 잡스의 꿈은 아이카(iCar)를 디자인 하는 것이었다. 잡스는 애플이 설계한 멋지고 혁신적인 자동차를 판매하는 날을 고대했다. 살아 있었다면 지금쯤 아이카를 디자인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팀 쿡도 직접적이진 않지만 애플카 개발을 암시하는 발언을 해왔다. 2015년 5월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크라이슬러 회장을 만나 "자동차 부문 진출에 대한 흥미를 갖고 있다" 밝혔다.
자율주행차일까? 그냥 전기차일까?
애플카 개발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15년 2월 월스트리트저널이 “애플이 2014년부터 '타이탄'이라는 암호명의 자동차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고 보도하면서부터.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은 애플이 2019년 출시를 목표로 전기차를 개발 중이라고 전했다. 1000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이 프로젝트를 위해 일하고 있고 미니밴 형태 전기차를 디자인 하고 있다는 것. 이후 테슬라 등으로부터 엔지니어 등을 대거 스카우트한 것으로 보도됐다.
하지만 애플이 개발하는 전기차가 자율주행차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애플이 자율주행차보다 전기차 개발에 집중할 거라는 전망이 우세했는데 디애틀랜틱은 "애플은 무인차 개발에 앞서 자사의 OS가 완벽하게 통합된 자동차를 개발함으로써 자동차산업 내 위상을 먼저 구축하길 원할 것이다“고 예측했다.
하지만 2016년 6월 블랙베리 소프트웨어 개발자 출신인 댄 닷지를 타이탄팀에 영입하면서 애플이 개발 중인 차가 자율주행 기반의 전기차일 거라는 견해가 제기됐다. 닷지는 블랙베리 운영체제(OS) ‘QNX’ 개발자로 애플에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QNX는 스마트폰 뿐 아니라 포드, 폭스바겐 등에서 내비게이션과 커넥티드 디바이스 등에 사용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차체와 배터리는?
애플은 2015년 초 유럽의 유명 자동차 연구가 폴 퍼게일 연구팀을 영입하면서 애플카를 직접 생산할 거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퍼게일은 유럽연합의 셀프주차 기술을 개발하는 'V-차지' 프로젝트를 주도한, 자동차 제조 전문가이다. 같은 해 7월에는 피아트 크라이슬러 품질관리 부사장 출신의 더그 베츠를 영입했는데 그 역시 30년 간 닛산, 도요타 등에 몸담아온 완성차 제조 전문가. 또 애플 기술진이 메르세데스, BMW 외주제작 업체인 마그나 슈타이어를 방문해 자동차 제작방법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한편, 애플이 리튬이온 배터리를 직접 생산할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는 애플이 리튬이온 배터리 제조업체 A123의 핵심 인력을 빼가려다 송사에 휘말리면서 알려졌다. 또 삼성, LG, 파나소닉, 도시바 등에서도 전문가를 데려갔다는 보도도 나왔다. 전기차에서 배터리가 핵심이 될 수밖에 없는 만큼 애플이 직접 개발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한때 애플카를 포기했다는 관측도
하지만 최근 애플카가 단지 잡스의 꿈으로 끝날지 모른다는 전망도 나왔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은 2016년 9월10일 애플이 최근 수십 명의 자동차 프로젝트팀 직원을 해고했다고 보도했다. 기술개발 진척이 더뎌지자 프로젝트를 재검토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을 수 있다는 것. 미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애플카는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사실상 애플의 자동차 개발 포기를 예상했다.
특히 2016년 초 자데스키 부사장이 개인 사유로 퇴사하면서 애플의 자동차 개발 프로젝트 진행은 순탄치 않았다. '잡스의 왼팔'로 불렸던 밥 맨스필드를 후임으로 앉혔는데 자동차에 대해 잘 모르는 맨스필드가 수장을 맡자 타이탄 프로젝트가 큰 변곡점을 맞이하게 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래서 자율주행 전기차라는 하드웨어 개발에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로 유턴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맨스필드가 자동차를 디자인하고 개발하는 것에서 자율주행차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쪽으로 초점을 옮겼다. 인력 일부는 다른 부서로 가거나 자신이 원래 일했던 기업으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에 관한 한 애플은 이미 2014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아이폰과 차량을 연결하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카플레이'를 선보였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란 차에서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정보 시스템이다.
카플레이는 USB로 차량과 아이폰을 연결하면 차량용 디스플레이에 아이폰 화면이 구현되는 방식이다. 차량으로 전화통화와 음악 재생, 인공지능 시리(siri) 등 아이폰 기능이 가능하다. 업계에서는 카플레이가 향후 애플 자율주행 자동차의 운영체제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애플이 애플카 개발을 접더라도 강력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사가 될 수 있는 셈이다.
벤츠, 포드, BMW, 토요타 등 40여개 완성차 브랜드가 이미 카플레이를 탑재하고 있다. 또 BMW, 폭스바겐 등은 애플워치를 통해 자동차 시동을 켜고 끄는 것은 물론 위치를 탐색할 수 있다.
애플은 애플카 의지 버리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보도가 나온 것이 바로 애플이 슈퍼카 제조사 맥라렌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 애플카 개발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맥라렌은 2015년 1654대의 차를 판매했을 뿐이지만 기업 가치는 약 10억~15억 파운드(1조4500억~2조1700억원).
수십 년 간 F1 레이싱카와 100만 달러가 넘는 비싼 스포츠카를 개발하면서 고도의 자동차 생산 기술을 쌓았다고 평가된다. 2주마다 F1 대회에서 새롭고 개선된 차를 내놓으면서 한 번도 데드라인을 넘긴 적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동차 기술에서 혁신적 선구자로 꼽힌다. 특히 맥라렌 레이싱카는 차량에 탑재된 센서로 타이어 압력과 브레이크 온도 등의 데이터를 수집, 분석해 차량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센서 전문성이 강점이다.
비록 맥라렌은 인수설을 부인했고 애플은 공식 언급을 피했지만 이를 처음 보도한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인수 검토가 애플이 여전히 자동차를 차세대 먹거리로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라고 평가했다. 다만, 자동차 전문 업체 인수를 통해 생산에 필요한 기술과 생산능력까지 확보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는 것이다.
특히 애플은 전기이륜차 스타트업인 릿 모터스 인수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릿 모터스는 한국계 미국인 ‘다니엘 김’이 샌프란시스코에 설립한 회사로 이륜 전기차가 외부 차량과 충돌해도 넘어지지 않는 균형기술인 ‘자이로스코프’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테슬라를 넘어서는 자동차?
그래서 애플의 자동차 개발 전략이 점점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디언은 “맥라렌 같은 하이엔드 브랜드에 구애를 보냄으로써 애플은 닛산의 리프나 향후 출시될 테슬라의 모델3 같은 차량들과는 가격 경쟁을 벌이지 않을 것임을 암시했다”고 해석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애플은 분야를 넘어 혁신을 적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동차에서도 새로운 소재, 새로운 생산 공정 등 자동차 산업 전반에 걸친 새로운 기술이야 말로 애플의 전략에서 매우 큰 부분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