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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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중요한 지방회의가 있어 예약해 둔 아침 9시 KTX를 타러 서울역에 가야했다. 서류 준비 때문에 8시25분쯤 서초동에서 택시를 탔다. 불안한 마음에 실시간 내비게이션을 조회해봤더니 서울역 도착시간이 9시10분. 맙소사, 기차를 놓칠 판이었다. 

“기사님. 큰일입니다. 9시 기차를 타야하는데 내비게이션을 보니 늦을 것 같아요. 어쩌죠?” 당황한 내 질문에 기사 분은 “제가 뭘 어떻게 하겠어요? 내비게이션에 그렇게 나온다면 방법이 없죠 뭐”라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나는 달리는 택시 뒷좌석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기사님, 좀 더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기차 놓치면 큰일입니다. 중요한 회의라…” “중요한 회의라면 미리 미리 나오셨어야죠. 지금 출근시간이잖아요.”

그 때 기사분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친구와 웃으며 통화를 했다. 그 와중에 신호가 바뀌는 것을 잘 파악하지 못해 안 걸려도 될 신호등에 걸리기까지 했다.

“기사님. 신호 바뀔 때 좀 빨리 가주시면 좋겠는데…” “노란 불일 때 무리하게 건너가면 사고 납니다. 딱지 끊으면 손님이 책임지실 겁니까?”

속에서는 천불이 일었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실시간 내비게이션 검색을 계속했다. “기사님, 터널 지나지 마시고 옆길로 가는 게 더 빠르다고 나오는데요?” “알겠습니다. 손님 시키는 대로 하긴 하겠습니다만 막혀도 책임 못 집니다.”

터널을 지나지 않은 것이 내겐 ‘신의 한 수’였다. 서울역 광장에 도착한 시간이 8시54분. 기사 분은 “어이쿠, 잘 하면 기차 타시겠습니다. 허허”라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나는 서둘러 계산을 마치고 승강장으로 달렸고 출발 1분 전에 가까스로 기차를 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기사 분께 고맙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기사 분 때문에 들었던 불쾌한 느낌은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앞이 캄캄해서 변호사를 찾아온 의뢰인에게 나 역시 이렇게 대응하지 않았던가? “계약서를 잘못 써서 그렇게 된 걸 제가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 애초에 잘 하셨어야죠?” “빨리 재판 진행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됩니까? 어차피 법원에서 진행하는 건데요. 재촉하지 마세요.” “정 그러시면 딴 방법을 강구해보시던지요.”

그러다 나중에 승소한들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고마움을 느끼겠는가? 의뢰인은 항상 초조하고 황망한 마음이다. 변호사가 그러한 의뢰인의 상황을 십분 이해하고 같이 마음을 써준다면 의뢰인은 위안을 받고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도록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어 준 그 기사 분께 오히려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