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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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의 영화 한편을 끄집어 내본다. 법정에서의 치열한 증인신문으로 진실을 밝혀내는 군법무관의 활약을 다룬 톰 크루즈 주연의 1992년 영화 ‘어퓨굿맨’(A few good men).

쿠바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에서 산티아고라는 사병 한명이 죽은 채 발견된다. 힘든 훈련을 이기지 못해 다른 부대로 전출해 줄 것을 타 기관에 청원하던 고문관 산티아고. 평생을 야전에서 생활한 제셉 대령(잭 니콜슨)은 산티아고의 군기를 잡으라고 얼차려(코드레드)를 명령한다. 산티아고의 선임병인 상병과 일병은 명령에 따라 그에게 얼차려를 주었는데 그 과정에서 그만 사고로 산티아고가 사망한 것. 일이 이렇게 되자 제셉 대령은 자신이 명령을 내린 사실을 부인했고 애꿎은 상병과 일병만 기소된다.

상병과 일병에 대한 변호를 맡은 법무관 캐피 중위(톰 크루즈). 그는 괜히 싸워봐야 불리할 거라 판단하고 피고인들에게 죄를 인정하는 대신 재판부에 선처를 부탁하자고 권유하지만, 명예를 위해 중형을 감수하고라도 정식 재판에 임하겠다는 도슨 일병 때문에 본격적인 법정 공방을 벌이게 된다.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이 사건 중심에 제셉 대령이 있음을 알게 된 캐피 중위는 충성, 명예, 애국 같은 신념을 굳게 믿고 실천하는 ‘상남자’ 제셉 대령을 법정으로 불러들여 사건의 진실을 추궁하기로 한다. 제셉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 채 몰아붙이듯 질문하는 캐피 중위에게 제셉 대령은 가소로운 듯 되묻는다. “전방에서 근무해봤나? 우리는 명령에 복종한다. 안 그러면 모두 죽어.”

캐피 중위는 추궁한다. “당신이 부하들에게 코드레드를 명령했습니까? 진실을 말하십시오!” 제셉 대령은 코웃음 친다. “진실? 너는 진실을 감당할 수 없어.” 캐피 중위는 제셉 대령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계속 몰아붙인다. 그 상황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제셉 대령은 캐피 중위에게 소리친다. “그래, 내가 명령했다! 어쩔래?” 자신의 범행을 자백한 제셉 대령은 법정에서 바로 수감된다.

/사진=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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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내게 큰 울림을 준 것은 바로 그 다음 장면.

기소됐던 상병과 일병에게는 상관의 불법한 명령을 거부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불명예 제대처분이 내려진다. 이미 제셉 대령이 자신의 불법명령을 자백했음에도 이러한 처분을 받게 되자 일병은 캐피 중위에게 묻는다.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냐고.

캐피 중위가 어떻게 답해야 할지 머뭇거리는 사이 옆에 있던 공동피고인인 상병은 마치 자신에게 타이르듯 담담히 일병에게 답한다.

자신을 지킬 능력이 없는 사람을 위해
싸워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한 불명예,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죄다.


나는 그 대사를 듣고 한방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산티아고의 죽음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얼차려 명령을 내린 제셉 대령이 지는 것이 맞다. 하지만 불법적인 명령에 아무런 이의제기 없이 ‘명령이니까 뭐’라며 그대로 따른 상병과 일병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한 그 대목. 바로 이 장면으로 인해 이 영화는 재미있는 소재를 버무린 A급 상업영화가 아닌 명화의 반열에 올랐다고 생각한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특히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그런 문제라면 우리는 책임질 가해자를 찾는 데 혈안이 된다. 가해자를 찾아내 응징함으로써 우리는 서둘러 마음속의 죄책감을 덜어낸다. 하지만 과연 ‘그’만이 가해자일까?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는 현실에서 복잡하게 얽힌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다 덜어내고 누구 하나를 가해자로 독립해서 특정을 하는 것이 어느 정도 정당성을 가질는지 의문이 든다.

우리 모두는 그 크기야 다소 다르겠지만 ‘자신을 지킬 능력이 없는 사람을 위해 싸워야 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