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시대 오(吳)나라 사람 요리(要離)는
오왕(吳王) 요(僚)의 아들 경기(慶忌)를 찔러 죽였다.
<사마천 사기>
초나라 사람 오자서는 고국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복수를 준비하기 위해 오나라로 갔다. 그는 자신의 복수를 위해 힘 있는 사람의 측근이 되기로 했다. 그가 선택한 사람은 공자 광(光).
당시 오나라 왕은 요(僚)였다. 요의 사촌 동생이 바로 공자 광. 공자 광은 야심만만한 사람이었다. 오자서는 이를 눈치 챘다. 오자서는 공자 광에게 거사를 도모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오왕 요를 제거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
오자서는 뛰어난 자객 전제를 공자 광에게 천거한다. 자객 전제는 요리를 배운 뒤 왕을 초대한 잔치 자리에서 커다란 잉어 배에 칼을 숨기고 접근해 오왕 요를 죽인다. 이렇게 공자 광은 사촌 형을 제거하고 오나라 왕에 오르니 그가 바로 오왕 합려(闔閭)이다.
죽임을 당한 오왕 요의 아들 경기(慶忌). 아버지가 죽은 후 위나라로 피신해 있었던 그는 당대의 무장이었고 합려는 그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오자서는 합려의 우환거리를 없애기 위해 경기를 제거하기 위한 자객을 선발한다. 그리하여 간택된 자객이 바로 요리(要離)이다.
오자서는 오래 전부터 요리를 염두에 두고 그를 관리해 왔다. 요리는 왜소한 몸과 볼품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오자서는 그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익히 알고 있었다.
요리는 경기를 죽이는 거사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이 따르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그가 내건 조건은 상식을 반하는 것이었다. “제 오른팔을 자르고, 제 처와 자식들을 모두 죽여주십시오. 그래야 경기의 신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왕 합려는 거사를 성공시키기 위해 요리의 팔을 자르고 그의 처와 자식들을 죽인 후 불에 태워 강에 그 뼈를 뿌렸다.
요리는 위나라로 가서 경기에게 투항한다. 경기는 처음에 요리를 의심한다. 하지만 요리의 잘린 팔을 보고 또 첩자를 통해 요리의 가족들이 오왕 합려에게 죽임을 당한 것을 보고 요리를 신임하게 된다. 요리는 경기에게 “오나라로 돌아가 왕이 되시라”는 조언을 했고 경기는 환국을 결심한다.
행군도중 큰 강을 건너게 되었고 요리는 경기와 함께 지휘선에 올랐다. 요리는 자기 힘이 약한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바람을 탈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경기는 요리를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방비 없이 배의 중앙에 앉았다. 요리는 센 바람에 몸을 날려서 긴 창으로 경기의 관을 찔렀다. 경기는 비틀거리면서도 창을 떨쳐버리고 요리를 붙잡았다. 그의 머리를 움켜쥐고 물속에 집어넣었다가 번쩍 들어올렸다.
"나는 천하의 용사이다. 네가 감히 나를 해치다니." 경기의 부하들이 몰려와 요리를 죽이려했다. 그러나 경기는 부하들을 가로막았다. "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천하의 용사이다. 하늘은 두 용사를 어찌 한날에 죽이시려 하는가! 그를 풀어서 오나라로 돌아가게 하라." 이 말을 마치고 경기는 숨을 거두었다. 경기야 말로 진정한 영웅이었다.
경기의 부하들은 요리를 오나라가 보이는 강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갔다. 그러나 요리는 강을 건너지 않았다. 그는 길게 탄식했다. "왕을 위해 처자를 죽였으니 어질지 못했다. 새 왕을 위해 옛 왕의 아들을 죽였으니 의롭지 못했다. 내가 살아 돌아간다면 인과 의를 모두 버리는 짓이다." 그는 몸을 던져 강물에 뛰어들었다.
주위 사람들이 물속에서 그를 건져내고 말했다. "오나라로 돌아가면 영웅으로 칭송받고 작위도 받을 텐데." 그러나 그는 칼을 꺼내 자신의 두 다리를 찌르고 칼끝을 향해 목을 던졌다. 요리는 치밀한 전략가인 오자서에 의해 이용당한 소모품이었던 것.
후세 사람들은 요리의 암살 과정을 일컬어 무간도(無間道), 무간지옥(無間地獄)이라 칭했다. 혹은 아비지옥(阿鼻地獄) 또는 무구지옥(無救地獄)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은 뒤 그 영혼이 이곳에 떨어지면 그 당하는 괴로움이 끊임이 없기(無間) 때문에 이 이름이 붙었다. 목적을 위해 자신의 존재를 숨기며 끊임없이 번뇌하는 요리의 삶을 후세 사람들은 무간지옥에 빠진 것에 비유했다.
영화 ‘무간도’는 2002년에 홍콩에서 만들어진 작품으로 맥조휘가 각본을 쓰고 유위강과 맥조휘가 공동 연출했다. 영화는 범죄 조직에 침투한 경찰 스파이 진영인과 경찰에 침투한 조직원 유건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무간도’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무간도'는 홍콩 누아르의 부활을 알리고 화려한 대미를 장식했던 작품이다.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적에게 침투한 자가 겪는 자아상실감. 이는 결국 무간지옥에 떨어진 이의 고뇌와 비슷하다는 의미에서 '무간도'를 영화 제목에 사용했던 것이다. 이런 스토리 구조는 할리우드의 ‘디파티드’, 한국의 ‘신세계’ 같은 영화에 계속 사용되었다.
부를 위해, 권력을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지워가며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살아간다면 그 곳이 바로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다는 무간지옥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