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박사 출신인 K대표는 온화한 성격으로 직원들과 직접 접촉하는 것보다 혼자 연구에 몰두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CEO로서 직원들에게 싫은 소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그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었다. 


그래서 악역을 대신해 줄만한 사람으로 영입한 이가 C상무. K대표는 “연구에만 매진하십시오. 욕은 제가 다 듣겠습니다"라고 말하는 C상무가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다. 느슨하던 회사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C상무는 아침 7시 반이면 어김없이 출근해 직원들 출근시간을 챙겼고 잘못을 저지른 직원은 눈물 쏙 빠지도록 호통을 쳤다. K 대표는 자신은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어서 회사가 탄탄대로에 접어들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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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가 아니라 상무의 눈치를 보는 직원들 


그런데 1년 정도 지나자 회사 내에서 이상한 기류가 감지되었다. K대표는 자신이 형식상 대표이사에 불과할 뿐 한 명의 연구원에 불과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가 지시를 하면 직원들은 C상무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자신이 지시한 일인데도 C상무가 허락해야 직원들이 실행에 옮기는 것이 아닌가.


C상무는 직원들과 회식을 하면서 유대를 쌓았고 징계권을 적절히 휘두르면서 회사를 장악했던 것이다. 직원들은 점차 C상무와 코드를 맞추려 하고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더 민감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K대표는 기가 막혔다. 임직원들이 C상무의 생각이 무엇인지 더 따지게 됐으니 말이다.


C상무도 변해갔다. 처음에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던 그가 “대표님, 그게 말이죠. 제 생각은 다릅니다”라고 하면서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잦아졌다. 연봉을 올려달라는 요구를 공공연히 하고 나섰다. “직원들이 대표님에 대해 불만이 많습니다”라면서 말이다.


K대표는 변호사인 나에게 C상무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 문의해왔고 나는 K대표가 대주주로서 C상무를 이사직에서 해임할 수는 있으나 현재 문제된 사안만으로는 정당한 해임이라고 보기 어려워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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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는 형벌권과 포상권 모두 장악해야 한다는 한비자의 경고 


한비자는 저서에서 일관되게 형벌권과 포상권은 모두 군주 한 몸에서부터 나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이 주장은 권력이 군주 한 사람에게 귀속된 절대군주시대에나 걸맞으며, 분권을 통한 효율적 업무처리가 강조되는 현대 경영과는 동떨어진 주장이라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한비자가 이렇게 주장한 데는 이런 고려가 있었다. 즉 군주로부터 형벌권과 포상권이 떨어져 나갈 경우 그 권한을 물려받아 휘두르는 권신(權臣)들에 의해 권한이 남용될 위험이 크다는 점. 궁극적으로는 신하와 백성들이 군주보다 권신들의 뜻을 더 따르려고 할 것이고 결국 군주가 권위를 잃어버릴 수 있음을 경고하려는 것이다.


포상권을 위임받은 전상의 사례


한비자는 전상(田常)의 사례를 언급했다. 전상(田常)은 군주에게 작위와 봉록을 요청하여 벼슬아치들에게 주었다. 그는 백성들에게 곡물을 꿔 줄 때는 큰 말로 퍼주고, 거두어들일 때는 작은 말로 받아 은혜를 베풀었다. 이렇게 되자 제나라의 군주 간공(簡公)은 덕을 잃고 전상이 그 권한을 잡게 되었으며 결국 간공은 시해를 당했다.


전상은 백성들에게 은덕을 베풀어서 인심을 얻었다. 결국 덕을 베푸는 권한만을 사용하고도 간공을 시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형벌권을 위임받은 자한의 사례 


자한(子罕)이 송나라의 군주에게 말했다. "포상을 받는 것은 백성들이 좋아하는 일이므로 왕께서 직접 하시고 형벌을 받는 것은 백성들이 싫어하는 일이므로 신이 담당하겠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하자 송나라 군주는 형벌의 권한을 잃게 됐고 자한은 이를 이용해 결국 왕을 협박했다.


자한은 백성들에게 무서운 형벌권을 행사함으로써 두려움과 복종을 이끌어 냈다. 형벌의 권한만을 사용하고도 송나라 왕을 위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원래 그 은덕과 형벌권의 원천은 군주였지만 그 행사의 주체가 달라지자 백성들은 이를 행사하는 사람을 더 따르거나 겁을 내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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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호기를 부린다


한비자는 군주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소해휼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주고 있다.


전국 시대 중국의 남쪽 초나라에 소해휼(昭奚恤)이라는 재상(宰相)이 있었다. 북방의 나라들은 이 소해휼을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초나라의 실권을 그가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나라 선왕(宣王)은 북방의 나라들이 왜 소해휼을 두려워하는지 이상하게 여겼다. 어느 날 선왕은 강을(江乙)이라는 신하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자 강을이 대답했다.


"전하,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호랑이가 여우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러자 잡아먹히게 된 여우가 말했습니다. ‘잠깐 기다리게나. 이번에 나는 천제로부터 백수의 왕에 임명되었네. 만일 나를 잡아먹으면 천제의 명령을 어긴 것이 되어 천벌을 받을 것이야. 내 말이 거짓말이라 생각하거든 나를 따라와 봐. 나를 보면 어떤 놈이라도 두려워서 달아날 테니.’ 여우의 말을 듣고 호랑이는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과연 만나는 짐승마다 모두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짐승들은 여우 뒤에 있는 호랑이를 보고 달아난 것이지만 호랑이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북방의 제국이 소해휼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실은 소해휼의 배후에 있는 초나라의 군세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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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는 악역 맡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호가호위(狐假虎威)는 이렇듯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호기를 부리듯 남의 세력을 빌어 위세를 부리는 것이다. 위 사례에서는 C상무가 호가호위를 했던 것이다.


결국 K대표는 주총에서 C상무에 대한 이사해임을 결의했다. 그러자 C상무는 부당 해임이라면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한비자는 이렇게 말한다. “호랑이가 개를 굴복시킬 수 있는 까닭은 발톱과 어금니를 가졌기 때문이다. 가령 호랑이가 발톱과 어금니를 버리고 개로 하여금 그것을 쓰게 한다면 호랑이가 도리어 개에게 굴복할 것이다. 군주란 형벌과 덕을 가지고 신하를 제어하는 자이다. 만일 군주가 형과 덕의 권한을 놓아두고 신하로 하여금 그것을 쓰도록 한다면 군주는 도리어 신하에게 제어당할 것이다.“


독재를 일삼는 군주의 해악 못지않게 권신들에 의해 휘둘려서 자신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군주의 해악 역시 큰 법이다. 악역 맡기를 두려워하는 CEO들은 그 악역을 누군가가 대신 맡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충분히 인지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