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Pixabay
/사진=Pixabay


A사 창업자인 J회장은 경영승계를 위해 장남을 CEO에 앉혔다. 장남 J대표는 미국에서 MBA를 마치고 글로벌 컨설팅회사에서 4년 근무한 직후였다. A사는 전형적인 굴뚝산업을 영위하는 업체였는데 수익률은 하락추세였고 경쟁력도 잃고 있었다.

새로운 비즈니스 트렌드와 IT산업을 경험한 J대표는 A사의 체질혁신이 필수적이라며 신사업에 과감한 투자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외부인재를 영입했는데 대상은 유학 시절 동창생 혹은 컨설팅 회사 근무 시절 동료들이었다.

J대표는 이들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A사에서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의 고액 연봉을 제시하고 아파트를 제공하는 등 파격적인 대우를 했다. 덕분에 6명이 합류했는데 J대표는 이들로 미래 사업팀을 구성하고 중간결재라인을 없앴다.

영입된 직원들은 자부심이 상당했고 마치 A사의 침몰을 구해주러 온 구조요원 행세를 했다. 이들은 기존 비즈니스 모델과 관련 인원들을 정리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기존 인력들은 상실감과 박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20년 가까이 A사를 이끌어 온 임원들은 J대표와 영입 직원들에게 적대감까지 가졌다.

이들의 분석대로 A사의 기존 사업은 수익률이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낮은 수익률을 갖고서도 오늘의 A사를 성장시킨 것이 기존 인원들이었다. 그런데 J대표는 이들의 공로를 인정하기는커녕 정리해고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후 A사에서는 많은 문제들이 발생했다. 거래처로부터 물건을 납품받을 때 정상가보다 비싸게 사 준 후 뒷돈을 챙기거나, 회사의 세금관련 문제를 고발하겠다는 빌미로 돈을 요구하는 임직원들이 생겼다.

A사는 이런 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해 나에게 법률자문을 의뢰했다. J대표는 직원들의 모럴 헤저드 사건을 내게 맡기면서 기존 임직원들의 낮은 윤리의식에 대해 분개했다. “미국에서는 이런 일을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이번 기회에 아예 썩은 가지들은 다 잘라내 버릴 겁니다. 회사가 해 준 게 얼마인데 이런 식으로 회사 뒤통수를 친단 말입니까?”

물론 부정을 저지르고 회사 약점을 잡아 협박하는 임직원들이 잘했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임직원들이 그런 행동을 하게 된 데에는 J대표의 미숙한 경영 탓도 컸다. 

/사진=flickr
/사진=flickr

한비자는 <망징·亡徵> 편에서 나라가 망할 것으로 예측되는 다양한 징조를 열거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나라 안의 인재를 쓰는 대신 나라 밖의 사람을 구하며 오랫동안 조직에 충성했던 이들보다 외부의 인재에게 더 높은 지위를 부여할 때’이다. 한비자가 이 점을 나라가 망할 징조로 본 이유는 무엇일까? 대략 두 가지일 것이다. 

① 군주가 이렇게 행동하면 기존 세력들은 상실감과 패배감을 느끼면서 나라의 이익이 아니라 자기 개인에게 이익이 되는 행위를 하면서 나라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② 새로운 인재들이 끝까지 충성을 다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인재 등용에만 몰두한다면 불안한 기초 위에 성을 쌓는 것과 비슷한 형국이 될 수 있다.

/사진=Pixabay
/사진=Pixabay

위의 사례에서 J대표에게 부족했던 것이 무엇일까?

그가 새로운 비즈니스 개발을 위해 외부인재를 스카우트한 것은 필요한 일이다. 참신한 인재를 영입하는 것은 CEO의 임무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존 임직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기존 임직원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패배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언제 자신의 업무가 없어지고 해고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는 직원이 몇이나 될까. 그간 헌신한 것의 결과가 박탈감이라면 가까이 있는 유혹은 참기 어려울 것이다. J대표가 비리의 동기를 제공한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J대표는 기존 임직원들에게 신규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하다는 점을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했어야 했다. 기존 비즈니스도 중요하며 오히려 이것이 새 비즈니스의 기틀이 될 수 있으니 더 신경을 써 달라는 당부를 했어야 했다. 기존 임직원들의 존재감을 살려줬어야 했다.

CEO는 조직원 모두의 역량을 고르게 이끌어내야 하는데 외부의 인재를 들이면서 기존 조직원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안 된다. 한번 조성된 위화감과 박탈감은 쉽게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조직에 대한 충성도 하락으로 이어져 경영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사진=flickr
/사진=flickr

한비자는 <식사·飾邪>에는 군주와 신하의 심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현명한 군주가 위에 있으면 신하들은 사사로운 마음을 버리고 공적인 의리를 행하지만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가 위에 있으면 신하들은 공적인 의리를 버리고 사사로운 마음을 행한다. 이렇듯 이해관계에서 군주와 신하는 서로 마음을 달리한다.”

조직원들은 회사에서 살아남는 것에 무척 민감하다. CEO의 사소한 몸짓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CEO의 행동을 나름대로 평가한다. CEO가 현명히 대처를 하지 않으면 각자 사사로운 마음을 먹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이 CEO의 능력이다.

손자병법 <모공·謀攻> 편의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이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조직원들이 공감하는 공동의 욕구를 가지고 전투에 임할 때 승리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리더와 조직원이 같은 목표를 가져야 성공한다는 것이다. 서로 신뢰하지 않고 생각도 다를 때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일어난다. 자기 살 길만 도모하다 보면 조직은 결국 무너지게 된다.

A사는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

미래 사업팀이 제안했던 새로운 비즈니스들은 결실을 맺는 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 때까지는 기존 비즈니스가 A사를 뒷받침해야 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용도폐기 될 것이라고 생각한 기존 임직원들 중 일부는 모럴 헤저드를 통해 A사에게 손해를 끼치는 한편 다른 일부는 경쟁사로 자리를 옮겼다.

기존 비즈니스 모델에서 수익이 급격히 하락했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되자 결국 A사는 자금사정은 악화돼 전 직원들의 연봉을 삭감해야 했다.

그러자 J대표가 영입했던 외부 인원들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모두 사표를 내고 다른 직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J대표는 그제사야 기존 비즈니스의 고마움을 깨닫고 이를 정상화시키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