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스런 월스트리트의 부를 개미들에게 돌려주겠다! 이런 모토로 혜성처럼 등장한 미국의 증권앱이 개미투자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이름도 로빈후드이다. 

스탠퍼드대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두 명의 개발자가 만든 이 온라인 증권사는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두고 있다. 이 증권사가 든 무기는 활 대신 수수료 무료. 주식을 사고파는데 일절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고 있고 곧 암호화폐 거래도 무료로 제공할 예정이다.



상식 파괴, 수수료 없는 주식 거래

로빈후드는 2013년 설립돼 2014년 말 모바일용 주식거래 앱을 선보였다. 이후 웹 기반의 HTS(홈트레이딩 시스템)까지 개발했다.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된 주식은 물론 상장지수펀드(ETF) 거래도 가능하다. 스마트폰 터치나 마우스 클릭 몇 번이면 된다.

로빈후드의 수수료 정책은 파격적이다. 제로(0)%다. 계좌유지를 위해 현금잔고를 유지할 필요도 없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개미들도 쉽게 주식투자로 자산을 불릴 수 있게 말이다. 기존 증권사 거래 수수료는 거래 건당 7~10달러 정도를 받는다. 현금 잔고도 500~1만 달러를 요구한다. 로빈후드 출시 이후 지난해 10월까지 고객이 절감한 수수료만 5억 달러(약 5340억원).

개미들은 열광했다. 가입자가 출시 3년 반 만인 지난해 8월 200만 명을 넘어선 뒤 현재 300만 명에 달하고 있다. 주식거래 규모도 2015년 20억 달러에서 지난해 300억 달러로 폭증했다. 로빈후드 몸값도 크게 올랐다. 지난해 3월 러시아 출신의 억만장자 투자자 유리 밀너의 'DST 글로벌'는 이 회사의 기업가치를 13억달러(1조3900억원)로 평가하고 수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암호화폐 거래도 시작

로빈후드는 내달부터 암호화폐 중개도 시작한다. 세계 최초로 거래 수수료를 받지 않는 암호화폐 거래 사이트가 될 전망이다. 통상 암호화폐 거래에는 0.15% 정도의 수수료가 부과된다.

로빈후드는 현재 암호화폐 거래폭증에 대비한 설비를 확충하고 있다. 초기에는 비트코인, 이더리움 거래만 가능한데 향후 리플, 라이트코인 거래도 중개한다는 계획이다. 로빈후드가 지난 25일 이 같은 계획을 공개한 후 5일 동안 가입 예약자가 100만 명을 돌파했다. 

로빈후드 공동창업자중 한 명인 바이주 바트 대표는 "현재 로빈후드를 통해 거래되는 주식은 1만개가 넘으며 매일 수백만 건의 거래가 이뤄진다"면서 "우리는 무료 주식거래를 암호화폐 세계에도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돈은 따로 번다

로빈후드가 땅 파서 장사하는 것은 아니다. 수수료 수입은 없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매출을 올린다. 우선 수수료가 무작정 무료인 건 아니다. 미국 외 주식 거래에는 건당 50달러 수수료가 붙는다. 유로본드(유럽공동채권)와 캐나다 증권 거래에도 건당 35달러의 수수료가 부과된다.

2016년에는 '골드서비스'도 출시했다. 매달 6~200달러 회비를 받는데 이들 유료 고객은 '즉시 거래·출금’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돈을 빌려 투자하는 신용거래와 개장 전·후 시간외 거래도 가능하다. 이자 수입도 주요 수입원이다. 로빈후드가 고객 예치금과 주식을 이용해 투자 및 대출, 대차거래 등을 통해 수입을 올리는 방식이다.

월가에 부는 새바람

로빈후드의 활약은 보수적인 월가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지난해 2월 찰스슈왑, E트레이드파이낸셜, TD아메리트레이드 등 미국의 대표적인 증권사들이 줄줄이 주식거래 수수료를 35% 이상 낮췄다. 자산관리와 투자자문 등 고객서비스도 강화했는데 뻣뻣하던 대형 증권사들이 고개를 숙인 셈이다.

로빈후드는 당시 성명을 통해 "다른 증권사들이 중개 수수료를 낮춘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우리는 주식거래 수수료가 사람들의 금융시장 참여를 막는다고 본다"고 밝혔다. 포브스는 "로빈후드가 자산관리 등에서도 저가공세에 나서면 수수료가 더 내려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불안한 수익 모델

로빈후드가 월가를 위협하는 혁신적 서비스를 선보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확실한 수익모델이 없는 것이 약점이다. 예치금을 활용한 이자 수입만으로는 회사 운영이 힘들 수 있고 골드 서비스 고객이 얼마나 늘지도 미지수다.

해외진출도 추진하고 있지만 각국 규제에 막혀 있다. 2016년 6월 중국 바이두와 수수료 없이 미국 주식을 사고팔 수 있는 서비스 계획을 발표했지만 중국당국이 자국 IT 기업과 해외 금융기관과의 협업을 금지하면서 중단됐다.

암호화폐 거래도 수수료를 받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수입을 올릴 수 없다. 바트 대표는 "암호화폐 서비스는 '본전치기’가 될 것이며, 당분간 이 사업으로 수익을 낼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가입자 모집방법도 논란이다. 기존 가입자가 신규 가입자를 모집하면 무작위로 뉴욕증시 상장사 주식 1주를 지급한다. 무료 주식의 가치는 주당 평균 2.5~200달러, 최대 500달러로 제한된다. 기존 가입자가 보상을 위해 지인을 끌어들이는 일종의 '다단계식 마케팅’이다.

뉴욕타임스는 "로빈후드가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무료 주식거래라는 사업 모델이 지속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