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바오/사진=flickr
중국 역시 최대명절인 음력설 춘절. 빨간색 봉투에 세뱃돈을 넣어 주고받는다. 홍바오(紅包) 문화이다. 모바일시대가 되면서 이 홍바오를 놓고 중국의 두 인터넷 거물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치열한 전쟁을 벌여왔다. 올해로 격돌 5년째. 홍바오를 보낼 때 자신들의 플랫폼을 더 많이 이용하도록 하는 전쟁이다. 그 전쟁의 역사를 소개한다.
1. 2014년 → 텐센트의 '진주만 습격'
모바일로 홍바오를 주고받도록 하는 건 2013년 알리바바 알리페이가 먼저 시도했다. 하지만 단순 송금기능에 불과해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2014년 텐센트의 위챗이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도입하면서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① 랜덤으로 → 보낼 사람의 수와 총금액만 설정하면 위챗 친구 중 무작위로 선정해 홍바오를 보내도록 했다.
② 선착순으로 → 친구 10명을 채팅방에 초대해 홍바오 5개를 보내면 먼저 클릭해 봉투를 열어본 5명이 획득.
당시 춘절 연휴동안 위챗을 통해 4억 위안(약 680억원)에 해당하는 4천만개 홍바오가 오갔고 홍바오를 받기 위해 무려 800만 명이 위챗페이에 가입했다. 알리바바는 불의의 일격을 맞은 셈. 마윈 회장도 이때를 두고 "진주만 습격을 당했다"며 두고두고 원통해 했다.
2014년 텐센트 위챗페이가 탄생시킨 디지털 홍바오는 세뱃돈을 보내는 수백 년 이어진 오랜 전통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
파이낸셜타임스, 2017.5.1
마윈 회장이 올린 웨이보/사진=핀터레스트
2. 2015년 → 알리바바의 반격
이듬해 알리바바가 반격에 나섰다. 웨이보와 손잡고 '돈 날리기' 캠페인을 펼쳤다. 웨이보 사용자들이 질문을 올린 뒤 자신의 질문을 맞힌 사람에게 홍바오를 뿌리는 식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유명인에게 홍바오를 보내거나 반대로 그들이 뿌리는 홍바오를 받기도 했다.
마윈 회장도 99만9999개의 홍바오를 뿌렸다. 그는 데이비드 베컴과 함께 찍은 사진을 웨이보에 올리고 '누가 외계인을 닮았나?'라고 질문했다. 정답은 '나(Me)'였는데 답변 1억개가 등록되는 데 정확히 2분36초가 걸렸다. 정답을 맞힌 1,500만명에게 6억 위안(약 1,022억원)을 나눠줬다.
텐센트 위챗 홍바오 '흔들기'/사진=flickr
하지만 이때도 결국 승자는 텐센트였다. 텐센트는 7억명이 시청한다는 CCTV 춘절 특별방송 '춘완'의 스폰서를 맡아 8억 위안에 달하는 홍바오를 뿌렸다. 위치기반 서비스의 위챗의 '흔들기'(Shake) 기능을 활용했다.
5시간의 방송 중간에 사회자가 "지금 폰을 흔드세요!"라고 외칠 때 위챗 앱을 켜고 스마트폰을 흔들면 선착순으로 최대 5천 위안의 홍바오를 준 것이다. 중국 전역에서 위챗 사용자들은 분당 8억번, 5시간 통틀어 110억번 폰을 흔들었다. 한국과는 스케일이 다르다.
이 결과 2015년 홍바오를 주고받은 횟수는 알리바바의 알리페이가 2400만건이었던 반면 텐센트의 위챗은 10억건에 달했다.
텐센트 위챗 홍바오/사진=flickr5
3. 2016년 → 알리바바 회심의 한방
절치부심한 알리바바는 텐센트를 제치고 CCTV '춘완' 단독 스폰서를 따냈다. 방송을 지켜보다 TV화면에 '두드리기'(TAP) 자막이 뜨면 알리페이 앱에 접속해 스마트폰 화면을 마구 두드려 홍바오를 받아가는 것.
알리바바는 이를 통해 4억 위안(680억원)의 홍바오를 뿌렸는데 이벤트가 절정에 달했던 2016년 2월7일 저녁 9시9분 분당 210억 건의 '탭'이 이뤄졌다. 총 참여횟수가 3,245억건으로 전년 텐센트 이벤트의 30배에 달했다.
텐센트는 위챗을 통해 사람들이 사진과 홍바오를 교환할 수 있는 '순간들'(Moments) 이벤트로 맞불을 놨다. 무슨 사진인지 알아볼 수 없게 흐릿하게 처리된 사진이 공유되는데 사진을 선명하게 보고 싶으면 홍바오를 보내도록 한 것이다. 총 2900만의 사진이 등록됐고 1억2200만명이 사진을 보려고 홍바오를 보냈다.
텐센트 위챗을 통해 홍바오를 주고받은 건수는 2016년 80억건을 기록했다. 알리바바는 구체적인 수치를 밝히지 않아 전송량으로만 봤을 때는 또다시 텐센트의 승리였을 것이란 추측. 하지만 화제성과 기술력을 등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땐 알리바바의 '판전승'이라는 게 중론이다.
알리페이의 목적은 그동안 약점이었던 '연결성'을 높이는 데 있었다. 그리고 2016년 춘절 캠페인으로 11억명의 사용자들이 서로 연결됐다. 모바일결제 앱의 한계를 벗어나 확장될 기회를 얻은 것이다.
테크노드, 2017.3.11
4. 2017년 → 가상현실(AR) 전쟁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나란히 AR(증강현실) 경쟁에 나섰다.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포켓몬 고'를 본 딴 게임을 만든 것이다.
알리바바 : 카메라를 비춰 주변에 숨겨진 홍바오 찾기.
텐센트 : 정해진 시간에 특정 위치로 이동하면 하늘에서 홍바오가 떨어짐.
'꽝'부터 수백만원짜리까지 다양한 홍바오를 찾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거리마다 진풍경이 벌어졌고 언론에서는 '새로운 민속놀이가 탄생했다'고 평가했다.
주목할 만한 건 텐센트가 위챗이 아닌 QQ메신저를 출격시켰다는 것. QQ는 위챗의 아버지뻘인 PC기반 메신저 앱이지만 주된 사용자층은 25살 이하 지우링허우(90년대 출생자)이다. 위챗보다 훨씬 젊은 플랫폼이다. 홍바오가 더 이상 명절날 안부를 주고받는 전통이 아니라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한 놀이문화가 됐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예민한 젊은 층을 공략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위챗이 이미 홍바오를 주고받는 플랫폼으로 대세를 굳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2017년 특별한 이벤트 없이도 구정 전날인 1월27일 하루 총 142억개의 홍바오가 전송됐다.
그런데 대체 알리바바와 텐센트, 이 두 IT거물이 왜 이토록 전통의 홍바오에 목숨을 거는 것일까?
① 모바일 플랫폼을 장악하기 위해서
홍바오를 주고받는 사람은 은행계좌를 연동하고 서비스를 꾸준히 이용하게 된다. 사용자가 플랫폼에 귀속된다. 그래서 홍바오 전쟁에서 이기는 쪽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모바일 결제 시장의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텐센트가 위챗 대신 QQ에 힘을 쏟는 것도 이 때문이다. QQ지갑으로 모바일 결제에 발을 들인 90년대 젊은 층은 경제력을 갖췄을 때도 QQ지갑을 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② 둘은 서로 닮아갈 수밖에 없으니까
과거 인터넷 시대에는 알리바바와 텐센트의 주력 분야가 서로 달랐다. 알리바바는 중국 최고의 온라인 쇼핑몰이고 텐센트는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메신저의 최강자였다.
하지만 모바일로 전쟁터가 옮겨지면서 구분이 흐릿해졌다. 위챗은 결제기능을 붙이며 생활 전반을 책임지는 라이프스타일 앱으로 도약하려 하고, 온오프라인 결제 앱이었던 알리페이는 사용자들이 앱에 머무는 시간을 늘려 소셜미디어로 성장하고자 한다. 필연적으로 맞붙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올해 춘절은 어떤 모습일까? 올해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홍바오로 뿌리는 금액만 52억 위안(약 8,847억원).
알리바바는 카드 수집, AR게임, ‘춘완’ 방송 중 경품추첨 등 기존 이벤트를 총동원한다. 텐센트는 걸음 수에 따라 홍바오를 획득하는 캠페인을 마련했다. 2017년 누적된 걸음 수에 따라 홍바오를 추첨해서 나눠주겠다는 것. QQ메신저에 있는 만보계 기능으로 확인하게 된다. 설 연휴동안 걸음 수도 따로 측정해 홍바오를 선물한다.
사실 올해 홍바오 전쟁의 승자가 누가 되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홍바오 전쟁 이면의 중국 IT기업의 무서운 성장이다. 이들이 해마다 보여주는 기술력 경쟁이 바로 중국 모바일 결제 시장이 세계에서 가장 앞설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