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베조스가 독일 미디어그룹 '악셀 스프링거'의 ‘비즈니스 혁신과 사회 책임’ 부문 수상자로 선정돼 베를린을 방문한 4월24일 시상식장 밖에는 700명이 넘는 독일, 폴란드, 이탈리아 등 유럽의 아마존 근로자들이 몰렸다.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열악한 근무환경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이날 시위에 함께 참가한 독일 최대 노동조합 페르디(Verdi)는 성명을 통해 "아마존은 반노조적이며 직원들의 노조결성 요구는 매번 거부된다"며 "직원들에게 관심을 주지않는 경영자는 어떤 상도 받을 자격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시상식 후 베조스는 대담에서 “아마존의 성공 비결은 경쟁회사가 아니라 고객에게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누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물류센터 근로환경에 대해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아마존의 근무환경과 지불하는 임금수준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회사와 근로자를 중재할 노조가 필요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말 그가 자랑스러워할 만큼 아마존 물류센터 근로자들은 행복한 직장에서 일하고 있을까? 아마존 창고에서 일해본 직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 IT회사? 인건비 쥐어짜는 유통회사!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아마존 직원들의 연봉 중간 값은 2만8446달러(약 3045만원)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시간당 약 13.68달러(약 1만6444원)로 딱 전형적인 유통업체 창고근로자들의 임금이라고 WSJ는 전했다.
물론 전 세계 50만 명에 달하는 아마존 직원 대부분은 물류센터의 비숙련 노동자들이다. 미 증시에서도 아마존은 기술주가 아닌 유통주로 상장됐다. 하지만 아마존이 스스로를 유통회사가 아니라 IT회사로 선언하면서 직원 처우는 딱 유통회사로 지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 투자은행 파이퍼제프리의 마이크 올슨 애널리스트는 WSJ 인터뷰에서 "아마존은 물류창고 보병들에 의해 굴러가지만 정작 그들은 아마존이 그리는 인터넷세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미 온라인매체 디인터셉트(theintercept)는 최근 애리조나주 아마존 직원 3명 중 1명은 식료품을 살 때 '푸드 스탬프'(저소득층 식품보조 프로그램)에 의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감옥이 이렇겠다 싶었다”
영국 프리랜서 기자 제임스 블러드워스는 지난 3월 아마존 물류창고 직원으로 위장 취업한 경험을 담아 <하이어드(Hired)>를 펴냈다. 그가 체험한 근무환경은 상상 이상으로 가혹했다.
① 화장실 갈 시간 없어 물통에 볼일
"4층짜리 창고는 70만 평방피트(약 2만평) 규모이다. 1200명 직원 중 4층 근무자들은 1층의 화장실 2개를 사용하는데 왕복 10분이다. 그래서 일부 직원들은 '소변 통'을 이용한다. 직원들은 화장실에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농땡이 부리는 시간이 많다고 경고 받고 직장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떨며 살고 있다." (2018.4.15, 더선)
② 밥 먹을 시간도 없고
"제대로 쉬는 시간이 없다. 10시간30분을 근무하면서 점심시간은 고작 15~20분이다. 그나마 쉬는 시간 중 5분은 문 밖으로 나가는 시간이다. 식사는 고사하고 물도 제대로 마시기 힘들다. (2018.4.18, 비즈니스인사이더)
③ 감옥 같은 감시
"창고는 휴대전화 반입 금지다. 후드 티와 선글라스도 금지다. 창고에서 나갈 때마다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혹시 물건을 훔쳐 가는지 확인하기 위해 몸수색을 당한다. 공항에서처럼 벨트도, 시계도 다 풀어야 한다. 감옥이 이렇겠다 싶었다. 계란판 위를 걷는 느낌이었다." (더선)
◇ 아파도 안 된다!
아마존은 근태 관리를 위해 포인트 시스템을 운영한다. 6포인트 이상 경고가 쌓이면 해고된다. 그래서 직원들은 아파도 출근한다. 익명의 커뮤니티인 ‘오거나이즈’가 영국 아마존 창고직원 24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아프다는 이유로 지적을 당해본 적 있나'라는 질문에는 55%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몸이 정말 좋지 않았지만 억지로 출근했다. 2시간쯤 근무했을 때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관리자에게 말하고 병가를 냈다. 의사진단 결과 유행성 열병이었다. 나는 의사 소견서까지 제출했지만 결국 포인트를 받았다."
"당신이 아파서 자리를 비우거나 출근을 하지 않았다? HR부서에 아무리 이유를 설명해도 결국 벌칙을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의 관점에서 우리는 아플 권리도 없다."
"일을 하다 병원으로 실려 갔다. 다음날 누군가 내게 전화해서는 왜 자리를 비웠는지 물었다. 상황을 설명했지만 '전화 없이 무단결근(no call no show)'으로 기록됐다."
지난해 11월 영국 에섹스주 틸버리의 아마존 물류센터에 5주간 위장 취업한 미러(Mirror)지 기자는 "많은 직원들이 종아리 햄스트링, 손목 인대 부상,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고통당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가 찍은 사진의 직원들은 선 채로 잠시 눈을 붙이거나 의자에 쪼그려 앉아 쉬는 등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쓰러진 직원을 후송하기 위한 앰뷸런스 사진도 있었다.
한 민간단체 조사에 따르면 2013년부터 7명의 직원이 물류창고에서 숨졌다. 지게차에 치이고, 트럭에 치이고, 야간근무를 마치고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컨베이어 벨트에 빨려 들어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
고객에 대한 집중을 최우선 가치로 하고 이를 위해 뭐든 한다는 제프 베조스. 고객은 행복할지 모르지만 직원들은 불행하다 생각한다. 그래서 베를린 시위 한 참가자는 이렇게 꼬집었다.
"혁신도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직원들을 착취해 세계적 독점을 확대하는 것에 혁신이라는 용어를 부여할 수 없습니다."
근로자의 날을 일주일 앞둔 이날 베조스가 받은 상의 이름이 ‘비즈니스 혁신과 사회 책임’(business innovation and social responsibility)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