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브렉시트를 후회하게 될 것이다.”

 

지난해 3월 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유럽의회에서 한 말이다. 실제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무합의(노 딜·no deal) 탈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향해 가고 있다. 15일(현지시간) 영국 하원이 브렉시트 합의안을 부결시키면서다.

 

영국 여론조사기관 유거브(YouGov)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브렉시트 반대 여론은 46%로 찬성을 4%포인트 앞섰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기일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지금, 노딜 브렉시트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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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起)-영국은 왜 브렉시트를 택했나?


2012년 말 유럽 재정위기를 기점으로 영국이 EU 내에서 연간 15조원에 달하는 분담금과 이민자 수용 등 지나치게 높은 의무를 진다는 불만이 높아졌다. 특히 저소득층과 대영제국 향수가 남아있는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브렉시트에 힘이 실렸다.

 

영국 보수당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당시 총리였던 데이비드 캐머론은 2015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재집권에 성공할 경우 브렉시트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는 EU 잔류를 원했지만, 당내 탈퇴파를 잠재우고 극우정당으로 쏠리던 표심을 돌려놓기 위함이었다. 캐머론 총리는 브렉시트 부결을 자신했고 유력 베팅업체들도 잔류 가능성을 70%로 점쳤다.

 

2016년 6월 23일 국민투표 결과 예상을 뒤엎고 찬성 51.9% 반대 48.1%라는 근소 차로 브렉시트가 결정됐다. 캐머론 총리가 사의를 표하고 탈퇴파 수장 격이던 보리스 존슨 런던시장이 총리경선 출마를 포기하면서 소극적 EU 잔류파인 테레사 메이 총리가 총대를 메게 됐다. 브렉시트가 정치적 자충수였으며, 대비 또한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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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承)-합의안은 마련됐다. 그런데 왜?


메이 총리는 지난해 11월 EU와 브렉시트 시기와 조건 등을 담은 합의안을 마련했다. 문제는 합의안 내용이 너무 소프트(온건)하다는 것. 하드(강경) 브렉시트파는 합의 내용 중 전환 기간 후에도 적절한 해법이 도출되지 않을 경우 북아일랜드를 EU 단일시장에 남긴다는 '백스톱'(backstop) 조항에 반발했다.


하드 브렉시트파는 영국이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 완전 분리되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반면 소프트 브렉시트파는 노르웨이처럼 EU를 탈퇴하더라도 일정 분담금을 지불하며 무관세 등의 혜택을 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영국 의회에는 메이 총리의 온건 노선을 지지해줄 세력이 많지 않다. 2017년 브렉시트 지지 세력 확보를 위한 조기 총선은 보수당이 과반 의석을 잃으면서 악수로 작용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의회가 강경파, 온건파, 그리고 EU 잔류를 원하는 반대파로 나뉘어 '카오스'(혼돈) 그 자체라고 묘사했다. 

 

EU는 영국에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영국이 유리한 조건에서 EU를 탈퇴할 경우 ‘그렉시트’(그리스의 EU 탈퇴), ‘이탈렉시트’(이탈리아의 EU 탈퇴) 등 회원국 추가 이탈로 인한 연합 붕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영국은 ‘체리 피킹’(cherry picking·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챙기는 행위)을 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결국 영국 하원이 합의안을 압도적인 차로 부결하면서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이 더 커졌다. 메이 총리는 ‘플랜 B’를 제시하겠다고 나섰지만, EU가 재협상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제시할 수 있는 카드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전(轉)-영국 덮친 '노딜 공포'

 

노딜 브렉시트란 영국이 EU와의 합의안 채택 없이 3월 29일을 기점으로 EU를 탈퇴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국과 EU는 브렉시트에 따른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2020년 말까지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 머무르며 전환기를 갖기로 합의했지만, 어디까지나 합의안이 채택될 때의 얘기다. 합의안이 없으면 영국은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 즉시 제외된다. 하루아침에 사람, 상품, 자본, 서비스 등 4대 물자이동이 막히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금융, 항공, 군사 등 주요 부문 비상대책을 마련하고 EU 및 역외 국가들과 개별 협정에도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지만 공백 기간 동안 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①경기 침체: 영국 재무부는 노딜 브렉시트 후 15년간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10.7%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도 2차 세계대전 후 최악의 침체를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파운드화 가치는 25% 급락하고 실업률도 기존 4%에서 7.5%로 오를 것이라는 분석이다.

 

②생필품 대란: 노딜 브렉시트 후 영국은 EU와 세계무역기구(WTO) 기준에 따라 무역을 기준 최대 38% 수준의 관세가 도입되면 제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국은 식품의 3분의 1을 EU에 의존한다. 통관 절차를 새로 도입하는 동안 원활한 물자 공급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 최근에는 쌀, 파스타, 물 등을 사재기하는 ‘브렉시트 준비족’(Brexit preppers)까지 등장했다.

 

③기업 이탈: 기업들은 탈영국 움직임을 가속화할 수 있다.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분야는 유럽 각국에 생산공장을 보유한 제조업체이다. 예를 들어 독일 BMW 미니 모델에 장착되는 크랭크축의 경우 프랑스(주조)→영국(정형)→독일(엔진 장착)→영국(완성차 장착)의 4단계를 거친다. 영국 해협을 3번이나 건너야 하는데, 이때마다 관세 및 통관비용이 적용될 경우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④이민 정책: 영국과 EU는 노딜 브렉시트 후에도 상호간 90일 단기 비자 면제를 적용할 것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해외에 장기 체류하는 국외 거주자이다. 이들은 EU 시민권으로 취업과 의료서비스 등의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앞으로도 이를 보장받을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 현재 영국 외 EU 회원국에 거주하는 영국인 수는 약 130만 명, 영국에 거주하는 EU 시민권자는 370만 명이다. 

 

⑤제3국과의 관계: 우리나라를 비롯한 제3국도 노딜 여파를 피해가기 어렵다. 영국이 아닌 EU와 무역협정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EU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EU에 자동차를 무관세 수출하고 있지만 노딜 브렉시트 후에는 영국과의 별도 협정 체결 전까지 약 10% 관세를 내야 한다. 또 위성방송사업자 계약 변경에 따라 영국 프리미어 리그(EPL) 중계에서 손흥민 선수의 활약상을 볼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결(結)-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는?


메이 총리의 '플랜 B'는 협상 시한 연장일 가능성이 높다. 재협상, 조기총선, 국민투표 등 어떤 방법을 택한다 하더라도 3월 말까지 마무리 짓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EU 회원국과 하원 동의 하에 탈퇴 절차를 규정한 리스본조약 제50조를 연장할 수 있다. 


조기 총선을 통해 의회 내 특정 세력에 힘을 실어주는 방법도 있다. 16일 영국 하원이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가 제출한 메이 총리 불신임안을 부결시키면서 메이 총리 퇴진 후 조기 총선을 실시하는 방안은 선택지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메이 총리가 하원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 조기 총선을 치를 가능성도 있다. 다만 총선 결과가 원하는 대로 나올지는 미지수다. 


제2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하지만 보수당의 정치적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애초에 브렉시트를 국민투표에 부친 것도 보수당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도 있다. 


EU는 재협상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영국의 EU 잔류를 은근히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사법재판소(ECJ)는 영국 정부가 브렉시트를 철회하더라도 합법이라고 판결했다. 도날드 투스크 EU의회 상임의장은 15일 자신의 트위터에 "딜이 불가능하고, 노딜을 원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면 누가 유일한 긍정적 해결책을 제시할 용기를 낼 것인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