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1년. 서 검사가 JTBC에 출연했던 것이 2018년 1월29일 저녁이었다. 이후 각계의 폭로가 이어졌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우리는 이들의 용기에 찬사를 보냈고 관행과 제도, 우리의 인식 수준을 반성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이제 자문해야 할 질문은 '피해자들에 대한 우리의 공감능력이 얼마나 성장했는지'이다. 공감은 이들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이해하면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왜 저항하지 못했느냐' '왜 뒤늦게 문제를 삼는 것인가’라는 우문과 편견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들이 자신의 아픔을 드러냈을 때 목소리를 다시 한 번 정리한다. 이들의 용기에 비례해 우리의 공감능력도 발전했는지 점검해보자.
너무 놀라 대응할 겨를도 없었고
"사실 제가 결코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이 되지 않아서요. 내가 환각을 느끼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장례식장 성추행 폭로한 서 검사, JTBC)
"제가 그때 반팔 민소매 옷을 입고 겉에 카디건을 걸치고 있었어요. 그런데 술 마시다가 갑자기 그분이 성희롱적인 언어를 쓰면서 옷을 좀 벗어보라고 했어요. 저는 그때 너무 놀라서 이게 진담일까 하고 너무 황당해서 그냥 가만히 있었어요. 그런데 그가 계속해서 약간 짜증어린 목소리로 '자네, 옷 좀 벗어보게. 왜 안 벗어?' 그 말을 여러 번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 때 '아, 이게 진담이구나.' 그래서 그 순간 너무 충격을 받아서 너무 놀라니까 대응을 못 하겠더라고요." (문단 내 성추행 폭로한 최영미 시인, 2018.2.7, SBS)
무섭고 끔찍해서 피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를 마주치게 될 때마다 나는 도망 다녔다. 무섭고 끔찍했다. 그가 연극계 선배로 무엇을 대표해서 발언할 때마다, 멋진 작업을 만들어냈다는 극찬의 기사들을 대할 때마다 구역질이 일었지만 피하는 방법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연출가 이윤택의 성폭력을 폭로한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 페이스북, 2018.2.14)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성폭력 사건에 직면하면서 나는 아침마다 버스에 타면 울고, 내리면 아무렇지 않은 척 출근하기를 반복했다. 아무리해도 사라지지 않는 플래시백에 고통스러워 하다 혼자서 부르르 떨고 분노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한동안을 보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간행물 <반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다 내 잘못인 것 같기도 했고
"(엄마한테 성폭력 피해사실을 이야기했을 때) 엄마가 저한테 그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건 네 잘못이다. 스스로 몸을 지켜야 한다.' 작은 성폭력들을 겪으면서 그 사실에 대해 아무한테도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게 다 제 잘못인 것 같았거든요. 그냥 혼자서 참고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냥 그렇게 살았어요."
(한국성폭력상담소 주최 '성폭력 생존자의 자리', 2019.1.17)
유난 떨지 말라고 혼나기도 했다.
"(엄마에게 오빠의 가해 사실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나에게 왜 지나간 일을 가지고 아직도 유난이냐며 윽박질렀다. 이미 오빠가 한번 사과하지 않았냐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억지로 받은 사과는 나에게 아무 위로도 되지 않는다. 단 한 번의 사과로 수십 년의 모든 상처가 없었던 일이 되지 않는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나눔터> 83호, 2018년 상반기)
그리고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3개월 동안 꾹 참다가 사장님한테 말씀을 드렸죠. 부장님이 계속 성희롱, 성추행을 한다고요. 저도 그 회사의 일원이니까 저를 보호해줄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제가 피해의식이 너무 심하다고, 그러면 같이 일하기 힘들다고 하는 거예요. 다른 직원들 전부 다 제가 이상하다고 그랬어요. 문제 제기를 했다는 이유로 너무 심하게 괴롭힘을 당했어요."
(한국성폭력상담소 주최 '생존자의 자리', 2019.1.17)
알려지면 낙인찍힐까 무서웠고
"나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도 알지 못할 정도로 어린 나이였지만 분명하게 느꼈던 것은 비밀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일 이 일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나는 비난받거나 더러운 사람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그런 막연한 두려움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동 성폭력 피해자 너울, <꽃을 던지고 싶다>)
하던 일을 못하게 될까 두려웠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경력이 끝날까봐 두려워 말을 못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테니스 지도자라는 꿈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고발했습니다."
(초등 시절 코치를 고발해 징역 10년형을 이끌어낸 김은희 테니스 코치, 2019.1.21, 중앙일보)
그래서 이런 두려움을 이겨내고 용기를 낸 피해자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큰 힘이다.
"저는 운동을 그만뒀지만 그럼에도 미투를 할 때 진짜 수많은 용기가 필요했고 두려움이 컸거든요. 그런데 심석희 선수는 이미 공인이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정상급의 스케이트 선수인데 그런 것들을 다 감안하고 용기를 내준 것에 대해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교시절부터 코치에게 성폭행 당했다고 폭로한 유도선수 신유용, 2019.1.15, KBS)
서 검사는 이렇게 말했다. "분명 의미 있는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미투가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것도 굉장히 우스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저 여성들이, 또 피해자들이 입을 열기 시작한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2018.12.27, 노컷뉴스)
너무 놀라 대응할 겨를도 없고, 무서워 피할 수밖에 없고,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며, 아무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이제 우리가 힘이 돼줄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