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가 5월초 '리니지'(리니지 리마스터)의 정액제 요금체계를 21년 만에 폐지하고 새로운 요금체계를 선보였다. 원래 리니지 게임을 하려면 월 2만9700원을 내야했다.
그런데 엔씨소프트는 정액제를 폐지하는 대신 '아인하사드의 가호'라는 5만 원짜리 아이템을 출시했다. 이 요금제는 한 달에 수십 만 원을 써야했던 '헤비 유저'와 돈을 많이 쓰지 않는 대신 게임을 제한적으로 했던 '무과금 유저' 사이를 이어주는 중간 단계의 요금 체계다.
이 요금제가 일각의 지적대로 유저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지, 게임업계의 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을지 보려면 지금까지 게임회사의 요금체계 히스토리를 살펴봐야 한다.
1. 패키지 구매
게임을 디스켓, CD로 팔던 시절 생긴 요금제다. 한 번 구매하면 계속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지금도 콘솔 게임은 패키지 구매 방식으로 판매하고 있으며, 최근 나온 PC 온라인게임 '배틀그라운드'도 패키지 구매 방식이다. 다만 최근 게임사들은 추가 수익을 올리기 위해 패키지 판매 이후에도 게임 내 아이템 판매를 병행하고 있다.
2. 정액제 게임
온라인 게임이 등장하면서 생겨났다. MMORPG 장르에서 특히 많은 요금제다. MMORPG는 게임 콘텐츠가 방대하고 ‘사람 vs 컴퓨터’가 아닌 ‘사람 vs 사람’의 대결로 즐기는 게임이기 때문에 게임 수명이 길다. 게임사 입장에서는 패키지를 팔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관리를 해줘야 하기 때문에 정액제로 안정적인 수익을 꾀하게 됐다.
3. 부분유료화(Free to Play)
이 요금제에서는 게임은 무료다. 게임사는 게임 내 캐릭터를 꾸밀 수 있는 스킨, 아이템 등을 판매해 수익을 올린다. 넥슨이 2001년 '퀴즈퀴즈'라는 게임에서 처음 도입했고, 지금은 전 세계 게임사가 가장 선호하는 요금체계다. 한마디로 '이기려면 돈을 내라'(Pay to Win)는 개념이다. 돈 안 내는 유저도 게임을 할 수 있지만 돈을 많이 쓸수록 강해지는 시스템이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모바일게임이 주류가 되면서 게임요금제는 대부분 부분유료화였다. 많은 유저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게임이 공짜니까. 게임사는 소수의 핵심 유저가 쓰는 돈만으로도 예전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게임의 밸런스 문제가 발생했다.
① 소수의 헤비유저가 강해지는 속도를 다수의 라이트유저는 따라가지 못한다.
➁ 게임 서비스 기간이 길어지면 양극화가 심해지고 라이트유저는 지쳐서 떨어져 나간다.
③ 게임 이용자 수가 줄면 헤비유저도 더 이상 강해져야 하는 욕구를 느끼지 못한다. 과시할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리니지의 모바일 게임인 ‘리니지M’에서도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 리니지M은 국내 모바일 게임 중에서 유일무이하게 100주 연속 매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엔씨소프트 매출의 55%를 차지하고 있는 핵심 타이틀이다.
엔씨소프트는 이용자 이탈을 방지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했고 이를 위해 라이트 유저와 헤비 유저의 사이를 이어줄 새로운 요금제를 탄생시켰다.
바로 이것이 엔씨소프트가 지난 3월에 '리니지M'에 도입한 '드래곤의 용옥'이라는 아이템이다. 그리고 이 요금제를 PC게임 리니지에 이식한 것이 '아인하사드의 가호' 아이템이다.
‘드래곤의 용옥’을 이해하려면 다시 ‘리니지M’ 도입 때부터 있었던 '아인하사드의 축복'이라는 시스템을 이해해야 한다. '아인하사드의 축복'은 게임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마일리지다. 게임을 하면서 몬스터를 사냥할 때마다 마일리지가 깎인다. 마일리지를 다 사용한 상태에서도 게임을 할 수는 있지만 게임 내 머니, 아이템, 경험치 등을 거의 얻을 수 없다.
'아인하사드의 축복' 시스템은 이렇게 작동한다. 아인하사드의 축복이
①0일때(1단계): 경험치 획득률 100%, 아데나(게임머니) 획득률 100%, 거래가능 장비(아이템) 획득 불가
➁ 1~200일 때(2단계): 경험치 획득률 400%, 아데나(게임머니) 획득률 150%, 모든 아이템 획득 가능
③ 201~9999일 때(3단계): 경험치 획득률 700%, 아데나(게임머니) 획득률 200%, 모든 아이템 획득 가능
즉, 아인하사드의 축복이 0일 때는 게임을 일주일 내내 해도 다른 유저가 하루 한 것만큼 밖에 강해지지 못한다. 의미 있는 아이템을 얻지도 못한다.
‘아인하사드의 축복’을 얻는 방법은 두 가지다. 매일 일정 시간에 접속하면 300, 500 단위로 몇 차례 무료로 지급해준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기에 나머지는 유료로 구매해야 한다.
그런데 마일리지는 내 레벨이 높아질수록 점점 더 빨리 닳는다. 예컨대 마일리지 1000을 보유하고 있을 때 내 레벨이 50이면 10시간가량 게임을 해도 다 닳지 않지만 내 레벨이 80이 되면 2시간 정도 만에 다 써버린다.
그래서 리지니M을 오래 한 유저 일수록 마일리지를 충전하기 위해 더 많은 현금을 지불해야 한다. 단지 게임을 정상적으로 플레이하기 위해 매달 수 십 만원을 써야 한다.
출시 2년 동안 구글플레이 최고 매출 1위 자리를 뺏긴 적이 없는 리니지M의 유저들도 이제 대부분 레벨 80이 넘는 강한 유저가 됐다. 게임을 정상적으로 플레이하기 위해 써야 하는 돈이 어마어마하다. 돈을 쓰는 유저와 못 쓰는 유저간의 간극이 커지면서 라이트 유저는 떨어져 나가고 헤비 유저도 지친다.
그래서 엔씨소프트가 리니지M에 도입한 것이 '드래곤의 용옥' 아이템이다.
드래곤의 용옥을 사면 30일 동안 '아인하사드의 축복'을 최소 2단계로 유지시켜준다. 공짜로 얻는 마일리지가 생기면 3단계 효과를 누릴 수 있고 다 사용하고 나서도 최소 2단계의 경험치와 아이템, 게임 머니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① 헤비 유저는 지금처럼 계속 많은 돈을 내고 '아인하사드의 축복'을 3단계로 유지하면 되고
➁ 라이트유저는 한 달에 5만원을 내면 헤비유저에 버금가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
③ 아예 돈을 쓰고 싶지 않은 유저는 그대로 공짜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즉, 무료로 게임을 하는 라이트 유저와 많은 돈을 투입하는 헤비 유저로 양극화 현상이 벌어져 게임 내 밸런스가 무너지자 중간 단계의 요금제를 신설한 것이다. 이를 PC게임에 적용한 것이 '아인하사드의 가호'이다.
정리하면 엔씨소프트가 21년 정액제를 포기하고 새 요금제를 도입한 것은 다음과 같은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① 기본적으로는 무료 → 오래 된 유저밖에 없던 리니지에 신규 이용자 유입
➁ 아인하사드의 가호 → 기존 정액제 2만9700원보다 비싼 5만원으로 책정해 수입 확보.
③ 부분유료화 아이템 판매 → 정액제 폐지하면서 더 적극적으로 아이템 판매 가능
리니지M에 도입된 '드래곤의 용옥'에 대한 3개월 여 평가는 나쁘지 않다.
① 수 십 만원을 써서 경험치 700% 효과를 유지하던 유저 중 일부가 5만5000원만 쓰고도 400% 이상의 효율을 낼 수 있게 됐고
➁ 무료로 게임을 하면서 돈 쓸 엄두를 못 냈던 라이트 유저 중 일부도 5만5000원을 내고 게임을 더 오래 즐길 수 있게 됐다.
통상 비난 일색인 게임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도 '용옥 효율이 얼마나 좋냐면' '용옥 쓰는 게 나은 거 같아요' 같은 긍정적인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리니지 이용자 입장에서도 선택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정액제를 폐지하면서 PC에서도 리니지M처럼 매일 소량의 아인하사드의 축복을 지급하고 있다. 라이트 유저 입장에서는 매달 내던 정액 요금을 내지 않고 공짜로 지급하는 마일리지만으로도 게임을 할 수 있고 게임을 더 하고 싶다면 5만원을 내고 전처럼 정액제로 게임을 하면 된다.
일각에선 월 2만9700원 정액이 월 5만원 정액(아인하사드의 가호)으로 사실상 인상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게임 이용자 입장에선 선택의 폭이 넓어졌고, 게임사 입장에선 부분유료화 게임의 문제였던 게임 밸런스와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 게임의 수명을 연장하는 새로운 실험이라는 평가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