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은 경기가 좋을 때 해야 할까?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투자를 받기도 쉽고, 사람들이 지갑을 열 때 해야 할까? 꼭 그렇지도 않다. 

빌 게이츠는 1970년대 두 차례 석유 파동으로 인플레와 실업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한창일 때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했고, 에어비앤비는 2008년 초 세계 금융위기가 본격화할 때 창업됐다. 우버가 창업된 것도 이때다.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 창업자인 폴 그레이엄은 2008년 10월 ‘왜 경기가 나쁠 때 스타트업을 시작해야 하나’(Why to start a startup in a bad economy)라는 글을 블로그에 올리고 11월에 에어비앤비에 투자했다. 이글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한국의 박종환 김기사컴퍼니 대표가 내비게이션 앱 '김기사'(현 카카오내비)를 만든 계기도 2008년 금융위기였다. 다니던 회사가 위기를 맞아 다른 회사에 매각되면서 박 대표는 회사를 나오게 됐고 그러면서 창업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김범수 카카오이사회 의장이 카카오톡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금융위기의 여진이 여전하던 2009년(출시는 2010년)이다.
 
박종환 대표는 최근 페이스북에 “2020년 코로나발 경제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자칫 자신감을 잃고 움츠리기 쉬운 환경이다. 내 경험으로는 기회는 이럴 때 온다”고 쓰기도 했다. 경제 위기가 닥치면 대기업 위주로 짜여있는 기존 경제질서에 빈틈이 생기고, 위기를 거치며 산업 지형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기침체 때 창업하면 좋은 점 다섯 가지를 정리한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폴 알렌(왼쪽)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폴 알렌(왼쪽)과 빌 게이츠



1. 좋은 인재 확보하기가 유리하다.


창업가에게 가장 어려운 과제는 좋은 인재를 확보하는 것. 그런데 경기가 좋을 때는 이런 인재들은 연봉이 많은 대기업으로 간다. 그래서 경기가 나쁠 때가 오히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훌륭한 인재를 확보할 기회이다.



2. 창업자들 사이 경쟁이 덜하다.


창업을 준비하던 사람들도 경기침체가 닥치면 위축되고 주춤하게 된다. 곧바로 창업하는 대신 대학원 진학 등을 통해 시간을 벌기도 한다. 실제 미국에서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MBA 지원자는 전년 대비 21%나 급증했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창업 경쟁자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당연히 투자자, 잠재적 파트너 등으로부터 관심을 받거나 언론 등을 통해 자신을 알리는 데도 유리하다. 그래서 폴 그레이엄은 2008년 글에서 “새로운 기술은 주기적으로 개발되고 그 기술을 토대로 성공하는 사례도 주기적으로 나타난다. 지금 시점에서 다른 사람들이 도전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성공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뜻”이라고 쓰기도 했다. 



3. 기술을 결합한 창업은 경기를 덜 탄다.


사실 생활경제와 직결된 전통적인 창업은 경기침체의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경기침체기에 레스토랑을 창업하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과 결합한 창업이라면 경기침체와 큰 상관이 없다. 오히려 경기회복을 기다리는 것도 비용이다.

그래서 폴 그레이엄은 마이크로소프트 사례를 들면서 “MS의 첫 제품인 '알테어 베이직'은 1975년에 꼭 필요한 상품이었다.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경기가 좋아지기를 더 기다렸다가 창업했다면 이미 늦었을 것”이라고 적었다.



4. 돈을 아낄 수 있는 서비스라면, 지금이 기회다.


효율적인 소비를 도와주는 서비스라면 경기침체기 좋은 창업 아이템이 될 수 있다. 초기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던 에어비앤비에 투자한 폴 그레이엄은 최근 트위터에 “에어비앤비에 투자한 것은 당시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닥쳤고 집주인들은 임대료를 필요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 경제매체 앙트레프레너는 왜 공유경제의 대표주자인 에어비앤비와 우버가 2008년에 동시에 창업이 됐는지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기도 한다.
 
"일반인들이 부업을 할 수 있게 만든 아이템이었다. 긱(gig) 이코노미는 이전에도 존재하고 있었지만, 세계적인 불황을 겪으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다. 사람들은 무너진 기존 제도에만 의존해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2020.3.11)



5. 위기를 견디면 반드시 반등이 오니까.


호황기 때가 아니라 침체기에 시작해 이를 견뎌낸 회사들은 경기 회복기에 턴어라운드를 거치며 투자 유치나 매각 등의 기회를 우선적으로 누릴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 경제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줄지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회사를 창업하려는 사람이 위축될 필요는 없다. 경기침체는 늘 스타트업에게 기회의 시간이었다." (포브스, 2020.3.11.)

그리고 폴 그레이엄의 이 말도 새겨보시라.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모든 사람(특히 학생)이 집에 갇혀 있으면 더 좋은 스타트업이 만들어질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페이스북은 하버드 시험 준비 기간(시험 전 강의 없는 일주일)에 시작됐다. 창업자가 자신의 프로젝트를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2020.3.11, 폴 그레이엄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