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서 남녀노소 모두 푹 빠져들었다는 스포츠가 있다. 바로 피클볼. 테니스 코트의 4분의 1 정도 되는 공간에서 탁구채와 비슷한 라켓을 들고 하는 운동이다. 2023년 1월 기준 미국의 피클볼 인구가 3,650만 명에 달한다. BBC는 미 스포츠산업협회를 인용해 “최근 5년 동안 피클볼을 하는 인구가 연평균 11.5%씩 늘고 있다”며 “가까운 미래에 미국의 주요 스포츠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피클볼이 처음 생겨난 것은 1965년이다. 미국 하원의원 조엘 프리처드가 지인들과 여름 휴가를 보내던 중 발명했는데 반려견 이름(피클스)를 따서 명명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대표적인 피클볼 애호가로 꼽힌다. 게이츠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피클볼이 등장한 지 50년이 지난 지금에야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엠마 왓슨, 셀레나 고메즈 등 할리우드 배우와 마이클 펠프스, 톰 브래디, 세레나 윌리엄스, 르브론 제임스 같은 스포츠 스타들까지도 피클볼 동호인을 자처할 정도로 인기가 폭발적이다. 피클볼은 왜 갑자기 미국의 인기 스포츠가 됐을까?
1. 쉽고 덜 힘든 운동
일단 난이도가 쉬운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활동 반경이 크지 않고 공은 플라스틱 재질로 가벼우면서도 표면에 여러 개 구멍이 있어 속도도 빠르지 않다. 라켓은 테니스 라켓보다 짧고 가벼워 다루기 쉽다.
서브를 할 때는 아래에서 위로 쳐올리는 언더핸드가 기본인데 그러다 보니 서브로 날아오는 공이 빠르지 않아 상대가 받아치기 편하다. 코트의 네트 바로 앞쪽은 ‘발리 금지구역’(Non-Valley Zone)인데 여기서는 스매시(smash)가 안 된다. 이 때문에 테니스나 배드민턴과 비교할 때 랠리가 긴 편이다.
2. 실내외 어디서든 즐기는 운동
전미 피클볼 협회(USAP)에 따르면 미국에는 3만 8,000개 이상의 실내외 피클볼 코트가 있다. 대부분은 테니스장으로 피클볼 코트 대용으로 사용 중이다.
하지만 피클볼은 전용 시설이 없어도 주택 뒷마당이나 동네 공터 등 어디서든 플레이가 가능하다. 분필과 테이프로 경계선을 긋고 네트만 세우면 정식 규격의 코트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닷컴에서는 네트, 피클볼 라켓, 공을 99달러(약 12만 원)에 판매하고 있다.
3. 건강관리와 다이어트 효과
과격하지 않지만, 다이어트 효과는 높다. 웨스턴 콜로라도대 연구에 따르면 피클볼을 할 때 1분당 평균 심박수는 109회, 칼로리 소모량은 354kcal이다. 이는 하이킹, 요가, 수중 에어로빅을 할 때와 비슷하다. 걷기운동을 할 때와 비교하면 피클볼이 심박수가 14% 더 높고 칼로리가 36% 더 소모된다.
뉴욕대 임상운동 생리학자인 헤더 밀턴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라켓이 작기 때문에 손과 눈, 신경근 협응에 좋다. 특히 여러 방향으로 움직이다 보니 역동적이며 회전 운동도 하기 때문에 상·하체뿐 아니라 코어근육을 단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피클볼의 인기가 급증한 데는 팬데믹 영향이 크다. 작은 공간에서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운동이다 보니 가족 단위 동호인이 늘어난 것이다. 2019~2022년 피클볼 인구는 159% 급증했다.
그러면서 피클볼을 미국의 메이저 스포츠로 끌어올리려는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프로리그가 확대되고 있는데 2년 전 8개 팀이 참가하던 메이저 리그 피클볼(MLP)은 현재 24개 팀으로 늘어났다.
실리콘밸리의 유명 투자자 게리 베이너척과 NBA 밀워키 벅스의 구단주 마크 레서리 등이 MLP 리그의 주요 투자자다. 농구 스타 르브론 제임스, 케빈 듀란트 그리고 수영 선수 마이크 펠프스, NFL의 전설 톰 브래디는 MLP 소속 팀에 투자했거나 팀을 소유하고 있다. 피클볼 프로 리그는 CBS와 ESPN와 TV 중계권 계약도 체결했다.
또한, 관련 비즈니스도 활발히 생겨나고 있다. 단적으로 피클볼 코트 대여 서비스다. 세인트루이스의 메도우 쇼핑몰은 생활용품 매장인 배드 배스 앤 비욘드(Bed Bath & Beyond)가 경영난으로 파산보호 신청을 하자 매장을 사들여 피클볼 코트로 바꾸고 있다. 뉴햄프셔 쇼핑몰은 의류 브랜드인 올드 네이비 매장을 폐쇄하고 피클볼 클럽인 패들 업을 입주시키기도 했다.
또, 미국의 유명 헬스클럽 ‘라이프 타임’은 350여 개의 피클볼 코트를 만들어 대회를 열고 있으며 올해 말까지 600개 이상의 코트를 확보할 예정이다. 수영장 업계의 에어비앤비라는 스윔플리(Swimply)도 피클볼 코트 대여 사업에 뛰어들었다. 현재 가정집에 있는 300여 개 피클볼 코트를 시간 단위로 임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피클볼 장비, 의류 관련 산업도 덩달아 호황이다. 여성의류 브랜드 엘리스 앤 올리비아는 지난해 피클볼 컬렉션을 선보였는데 꽃무늬 크롭 티셔츠와 미니 스커트가 매진되기도 했다. 피클볼 장비업체 셀커크 스포츠는 연말까지 피클볼 라켓 누적 판매량이 100만 개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마이크 반스 CEO는 “2020년 이후 회사 규모가 3배 성장했다. 팬데믹 이후 피클볼 네트가 동이 날 정도로 많이 판매됐고 신제품 라켓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고 말했다.
피클볼 때문에 미국인 의료비 부담이 늘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보험사 유나이티드헬스그룹에 따르면 올해 들어 피클볼로 인한 고관절 및 무릎 부상에 들어간 의료비가 최대 5억 달러(6,50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피클볼 인기가 높아지면서 2028년 LA 올림픽에 피클볼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 것 아니냐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