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즈, 자네가 추리하는 걸 듣고 나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매번 설명을 듣기 전까지 모르는 걸까?”

“왓슨, 자네는 눈으로 보긴 했지만, 관찰을 하지 않지. 보는 것과 관찰하는 것은 달라. 자네는 현관에서 방으로 올라오는 계단을 매일 봤겠지. 아마 수백 번쯤. 그런데 계단은 몇 개지?”

“그건...모르겠는걸”

“바로 그거야. 자네는 관찰(Observe)하지 않았어. 보기(See)만 했지. 난 계단이 17개라는 걸 알고 있어. 난 보면서 동시에 관찰하거든.” (코난 도일 ‘보헤미아 왕국 스캔들’)


창조와 혁신에 필요한 도구 혹은 과정엔 ‘상상’, ‘연결짓기’. ‘패턴읽기’. ‘유추’ 등 여러 가지가 언급된다. 그러나 첫 번째 단계는 무엇보다 ‘관찰’이다. 무언가를 뚫어지게 적극적으로 골똘히 보는 것. 수동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감각기관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정보는 ‘인상’을 만들어내는 데 그친다. 그러나 적극적인 관찰을 통하면 그 인상은 의미 있는 지식과 통찰로 전환된다.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감각과 직관, 영감을 낳는다.


넷플릭스


올해 초 화제를 모았던 TV쇼 <피지컬 100>은 인간의 몸과 근육, 동물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 참신한 시각이 돋보였던 프로다. 손호기 PD의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봤다. “MBC다큐 팀이 그동안 〈남극의 눈물〉 〈아마존의 눈물>같은 동물 다큐를 많이 찍었잖아요. 곰, 펭귄, 수달, 고라니 같은 동물을 특수 카메라로 찍는 작업도 많이 했구요. 그런 노하우를 그대로 적용하니까 근육의 움직임이나 표정 같은 것도 잘 포착되더라고요”(에스콰이어 코리아.2023.2.23.)

야생의 동물들을 클로즈업으로 뚫어지게 바라본 카메라의 ‘관찰’이 쌓여 인간의 몸을 야생동물의 그것처럼 들여다보는, 쇼프로를 다큐의 시선으로 찍는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됐다는 의미일게다.


동물 다큐 이야기를 하자면 봉준호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봉준호 감독은 한 강연에서 “작품의 영감을 어디서 얻냐”는 질문에 “특별하지 않다”며 영화 ‘괴물(2006)’의 핵심적 아이디어를 낳은 것은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유심히 본 다큐의 한 장면이라고 말한다. “보통 괴물은 사람을 잡아먹거나 해치는데 이 영화는 희생자를 ‘운반’하잖아요. 납치하는 거죠. 그게 이 영화를 다른 괴수영화와 완전히 다르게 만든 거였어요. 괴물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사실은 유괴범이 괴물인 유괴영화에요. 그 아이디어를 동물 다큐를 보다 얻은 거예요. 펠리컨이 물고기를 잡아먹지 않고 운반하더라고요. 거기서 플롯이 새끼를 쳐서 ‘괴물’이 된 거죠.”(한국영화아카데미 특강. 2013.08.19.)


넷플릭스


영화 ‘옥자(2017)’ 역시 매주 일요일 아침 습관처럼 시청하는 ’TV동물농장’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동물다큐와는 다르게 이 프로는 인간이 동물을 왜 필요로 하는지, 동물은 인간에게 뭘 기대하는지 보여줍니다. 결국 우리는 ‘같이 산다’는 거죠. 같이 사는 것에 있어서 예의가 뭔지, 동물과 관계는 뭔지.” 그렇게 매주 관찰한 결과 ‘돌연변이로 교배시킨 슈퍼돼지’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남다른 시각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아주경제,2017.7.2.)


일요일 아침마다 재주 부리는 동물들의 귀여운 모습만 보면서 ‘우리집 고양이와 개들은 무슨 간식을 줘야 저걸 시킬 수 있을까’ 정도의 생각에 머물렀던 스스로가 조금 부끄러워질 무렵, 봉감독은 한 방 가볍게 더 날린다. “여러분도 하루에 수백 번 찬스가 있을 거예요. 자극과 영감은 도처에 널려 있어요. 어떻게 캐치하느냐의 문제죠.”(한국영화아카데미 특강)


어떻게 하면 그처럼 캐치할 수 있을까. “어떤 문제나 공간을 변태적으로 가만히 관찰하고 있으면 여러 생각이 들게 마련이죠.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 같아요.” 변.태.적.인 관찰. “변태는 내게 곧 창의적인 사람들을 뜻합니다. 변태란 남들이 하지 않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의 관찰 습관은 “유리병속에 갇힌 바퀴벌레를 한참동안 들여다”보거나 “그림 하나를 앞에두고 두시간씩 보는” 방식이다. 단순히 사물을 시야에 들어오게 하는 수동적인 과정이 아니라. 어디에 집중할 것인지 아는 호기심 어린 적극적 관찰. ‘봉테일’이라고 부르는 세밀한 창조력은 거기서 비롯됐으리라.(tvN 백지연의인사이트:나는 변태입니다.2013.7.30.)


픽사베이


그림 한 장을 몇 시간씩 들여다보는 일은 실제로 하버드 대학의 제니퍼 로버츠 교수가 ‘예술사수업’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시키는 과제다. 로버츠 교수는 수업에서 반드시 세 시간동안 그림을 보게하는 과정을 필수로 넣는다. 학생들은 처음엔 당연히 반발하지만 결국 “놀랍게도 이 과정을 통해 작품을 재발견할 수 있었다”고 인정한다. 교수의 목표는 “고통스런 시간을 통해 그림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되고 그림 속으로 파고들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게 된다“는 걸 깨닫게 하는 것이다.(타나 실리그, <시작하기전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Jennifer Roberts -HILT 2013 Conference, Harvard University 유튜브)


로버츠 교수를 자신의 책에서 소개한 타나 실리그는 창의적인 인재를 만드는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유명한 스탠퍼드 디스쿨을 대표하는 교수다. 그 역시 학생들에게 매일같이 방문했던 익숙한 동네 쇼핑센터를 새삼스럽게 두 시간 동안 관찰시킨다. 그러면서 “상점의 글자는 서체는 어떤 것인가? 바닥의 모양은? 천장 높이는? 상점 안은 시원한가 따듯한가. 판매원이 고객과 접촉하기까지 몇분이 걸리나. 상품들이 어떻게 배열돼 있나. 고객들의 평균 나이는? 물건을 사는 고객 비율은?”등의 질문지를 채우도록 한다. 익숙하다고 생각한 장소에 모든 감각을 집중시키고 그속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새로운 눈을 뜨게 하는 ‘관찰의 힘’을 일깨우는 과정이다. (타나 실리그, <인지니어스>)


픽사베이


결국 위대한 창조와 혁신은 남들이 보지않는 것을 보고, 남들이 상상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그것을 실현해 내는 일이다. 그 맨 앞에 관찰이 있다.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것에 주목하고 집중하는 것. 막연한 인상이나 추측에 의존하지 않고 정확하게 읽어내어 정확한 통찰을 얻어내는 것. 우리는 지금 내 옆에 있는 세상 속에서 중요한 것들을 캐치하고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준비가 되었을까?






타나 실리그의 책에서 인상적인 한 구절을 더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젊은 물고기 두 마리가 나이든 물고기를 지나쳐 헤엄친다.

그들이 지나가자 나이든 물고기가 묻는다.

“좋은 아침이야, 젊은이들. 물은 어떤가?”

두 마리의 젊은 물고기는 한동안 계속 나아갔다.

마침내 한 마리가 다른 물고기에게 물었다.

“도대체 물이 뭐지?”

-데이빗 포스터 월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