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패션그룹 태피스트리가 85억 달러(11조원)에 카프리 홀딩스를 인수했다. 카프리 홀딩스는 마이클 코어스, 베르사체, 지미추를 보유하고 있다.
두 그룹을 각각 대표하는 코치와 마이클 코어스는 2010년대 초반까지 미국에서 10년 이상 '핸드백 전쟁'을 벌여왔던 라이벌이다. 그러면서 비슷한 전철을 밟아왔다.
① 한때는 명품 대접을 받다가 상장 이후 매스티지(Masstige, Mass + Prestige, 대중적인 명품) 브랜드로 전략을 전환했다.
② 단기수익에 대한 압박에 잦은 할인 행사를 펼치다 오히려 명품 이미지에 타격을 받았다.
③ 엄마들이 드는 중저가 가방이라는 인식 때문에 젊은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그런데 현재 두 브랜드의 상황은 정반대다. 2023년 1분기 마이클 코어스의 매출은 전년 대비 10.9% 감소한 9억1000만달러인 반면 코치는 7% 증가한 11억4000만달러.
특히 마이클 코어스는 여전히 외면받고 있지만 Y2K(2000년대) 유행을 등에 업고 코치는 Z세대가 사랑하는 'Cool girl(쿨걸)' 브랜드로 떠올랐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두 브랜드가 각각 그룹 매출의 70~80%를 차지하는 것을 감안하면 카프리 홀딩스가 태피스트리에 인수된 것은 결국 '핸드백 전쟁'의 승자가 코치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체 코치는 어떻게 마이클 코어스와 달리 턴어라운드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1. '저가' 이미지를 지우는 데 성공했다
코치는 2000년 초반까지 아울렛을 통해 저가 제품을 판매하고 본 매장에서는 정가 전략으로 명품 이미지를 유지하는 정책이었다.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기존제품을 아울렛에서 할인 판매하는 전략은 손쉽게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아울렛 매장의 큰 성공은 코치에 독이 됐다. 사람들은 더 이상 코치 제품을 정가에 사려 하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리면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정가 매장의 남아도는 재고가 아울렛 매장으로 흘러 들어가고 저가에 판매되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결국 코치는 럭셔리 지위를 잃고 중저가의 흔한 브랜드가 되어 버렸다.
명품 브랜드에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던 이미지 손실을 개선하기 위해 코치는 2014년부터 점진적으로 북미 정가 매장의 3분의 1을 폐쇄했다.
대신 브랜드 철학을 알릴 수 있는 플래그십 매장에 집중했다. 이전 정가 매장은 '로고를 가리면 같은 회사 직원들조차 마이클 코어스 매장인지 코치 매장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라는 혹평받았지만 리모델링한 매장은 장인정신을 강조한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고수했다.
또 250개 백화점에서 철수했는데 백화점들이 연말 재고를 줄이기 위해 떨이판매를 하는 것이 브랜드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코치의 경우 현재 백화점 등 도매업체를 통해 발생하는 매출이 10%이지만 마이클 코어스는 전체 매출의 3분의 1이 도매업체를 통해 나온다. 마이클 코어스가 도매업체의 판매 정책에 휘둘리기 더 쉬울 수밖에 없다.
코치는 2019년 제품 품목수를 40%나 줄이는 강수도 뒀다. 매번 새로운 디자인으로 신제품을 잔뜩 출시했다가 재고를 늘리는 것보다는 한두 가지 핵심 제품을 잘 파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이 같은 전략이 제대로 적용된 것이 2019년 가을 시즌 출시한 '태비(Tabby)' 백이다. 1970년대 코치 디자인을 재해석해 출시한 제품으로 출시되자마자 입소문을 탔다.
이전의 코치였다면 다음 신제품이 나오자마자 태비백을 아울렛 매장으로 보냈겠지만, 이번에는 태비백을 다양하게 변주시켰다.
기본 숄더백뿐 아니라 태비 지갑, 태비 크로스백, 태비 클러치 등으로 재탄생시키고 다양한 소재와 색상, 재질로 한정판 태비를 지속해서 내놓은 것이다. 가격대도 195달러에서 최대 4500달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결과 2023년 여름 태비는 가장 유행하는 가방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틱톡에서 가방 속 소지품을 자랑하는 'What's in my bag?(왓츠인마이백)' 대신 'what's #InMyTabby?(왓츠인마이태비)'라는 해시태그가 유행할 정도다.
"현재 코치는 다른 고급 브랜드와 동등한 수준으로 보인다. 고급스럽게 우아하고, 유혹적으로 향수를 자극한다.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코치의 컴백은 역사책에 기록될 것이 확실하다." (Varsity, 2022.2.5.)
2. 온라인 중국 공략에 성공했다
코치는 오프라인 매장을 줄이는 대신 온라인 매장을 강화했다. 2020년 매출의 8%를 차지하던 온라인판매는 2022년까지 39%로 증가했다.
도매 유통 대신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D2C(소비자직접판매) 채널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일찌감치 온라인 쇼핑몰을 잘 구축해둔 덕분에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도매 수요가 출렁일 때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온라인 판매 확대는 코치에 가장 중요한 글로벌 시장인 중국을 공략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코치는 경쟁사보다 빠른 2008년부터 중국에 진출했다. 2012년 위챗에 계정을 개설했고 2014년에는 알리바바 티몰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또 웨이보(Weibo), 샤오홍슈(Xiaohongshu), 더우인(Douyin)을 비롯해 2022년 신생 스트릿웨어 쇼핑앱인 듀(DeWu)에 이르기까지 중국 현지 소셜미디어와 이커머스 플랫폼에 적극 뛰어들었다.
코치의 웨이보 계정 팔로워는 451만명에 달하는데, 프라다(285만명), 샤넬(380만명)에 비하면 2배 가까이 많다.
"우리는 '디지털 퍼스트' 정신으로 티몰, 틱톡, 듀와 같은 현지 파트너들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숏폼 콘텐츠, 라이브 스트리밍 등의 활동을 통해 현지 소비자들과 소통하고 상호작용하려 한다." (토드 칸 코치 CEO, 2021.6.23., 보그비즈니스)
이렇게 쌓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중국에 오프라인 매장도 확장하고 있다. 2020년부터 중국에 문을 연 신규 매장이 60개 이상으로, 2022년 말 기준 280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도 이미 13개 매장을 오픈했고 앞으로 12개의 매장을 추가로 열 계획이다.
게다가 다른 패션 브랜드들이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 위주로 매장을 여는 것과 달리 코치는 자싱시, 저장성 등 하위 도시에도 진출하고 있다.
북미 지역과 달리 중국에서 코치는 여전히 '접근 가능한 럭셔리(accessible luxury)'의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중국은 2021년 '공동부유(함께 잘 살자)'라는 가치를 내세우며 명품 소비를 사치로 규정했다. 여기다 최근 내수 부진까지 겹치며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등 초고가 명품 시장이 위축된 상태다.
하지만 코치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규제의 영향에서 벗어났다. 초고가 명품 대신 코치를 선택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오히려 가장 인기 있는 명품 브랜드로 꼽히게 됐다.
덕분에 코치의 중국 내 매출은 현재 브랜드 전체 매출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3. '표현하는 럭셔리'로 Z세대까지 잡는 데 성공했다
코치의 턴어라운드 전략에도 위기는 있었다. 2021년 10월 코치가 재고로 쌓인 제품을 찢어서 버린다는 사실이 공개되며 큰 논란을 빚었던 것이다.
이는 2021년 8월 코치가 망가지거나 손상된 제품을 수선해주는 '(Re)Loved(리러브드)' 프로그램을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지속가능한 패션을 추구한다고 발표하고 뒤로는 제품을 고의로 손상해 폐기처분하는 모습에 많은 고객의 분노를 샀다.
재고를 폐기하는 것은 할인 판매 여지를 없애 고가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명품 브랜드가 관행적으로 해오던 일이었지만 코치는 이에 대해 사과하고 55만달러에 달하는 재고품을 기부했다.
그러면서 2022년 말 브랜드 가치를 '표현하는 럭셔리(expressive luxury)'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브랜드를 완전히 새롭게 바꾸고 럭셔리 브랜드의 지위를 되찾기 위해서는 코치에 늘 따라다녔던 '접근 가능한 럭셔리'라는 꼬리표부터 떼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어떻게 하면 코치라는 브랜드에 매겨지는 값어치 외에 다른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 그때 우리가 깨달은 것은 그동안 비즈니스의 중요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가격 정책과 할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토드 칸 코치 CEO, 2023.1.5., theEdge)
'표현하는 럭셔리'는 Z세대들이 자기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내주는 브랜드가 되겠다는 선언이다. 이 같은 전환을 대표하는 것이 2023년 5월 출시한 하위 브랜드 '코치토피아'다.
Z세대를 겨냥한 코치토피아는 폐기물 재활용 등 순환 자원에 기반을 두고 있다. 생산 때부터 공장 바닥에서 모은 가죽 조각 등을 활용해 가방과 액세서리를 만드는 것이다.
가방에 사용되는 가죽은 50%가 재생 가죽이고 가방에 달린 브랜드 태그의 재질은 70% 이상이 재활용 레진이다. 코치토피아 제품에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쓰레기장에 매립됐을 폐기물이다.
디자이너들의 작업도 완전히 거꾸로다. 디자인을 구상하고 스케치한 뒤 적당한 소재를 재료를 찾아 제품을 만드는 대신 쌓여있는 폐기물을 가지고 어떻게 배열해 제품을 만들지 고민한다.
또 코치토피아 가방 자체도 잘 분리되어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리러브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수선, 복원 등을 통해 재사용하려면 가방이 잘 뜯어져야 하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코치토피아 대표 모델인 '웨이비 딩키(Wavy Dinky)'의 경우 테두리와 연결 장치, 스트랩, 지퍼, 내부 수납공간 등 총 7개 파트로 분리된다.
또 가방에는 NFC 칩을 내장해 재활용한 재료의 출처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어떤 소재를 사용했는지, 어떻게 제조했는지, 또 수리나 복원 등 제품 이력까지 추적할 수 있다.
이런 제조 과정의 특수성 때문에 코치토피아 제품은 일반 코치 제품에 비해 생산량이 극히 적다. 모든 제품이 한정판이다. 그러면서도 재활용 소재를 사용했기 때문에 기존 코치 라인보다 저렴하다.
덕분에 Z세대의 소장 욕구를 자극해 매번 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완판 행진을 벌이고 있다. Z세대의 코치에 대한 관심도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코치는 올해 북미에서만 약 650만 명의 신규 고객을 확보했는데 이 중 절반이 Z세대였을 정도다.
태피스트리의 카프리 홀딩스 인수는 규제 당국과 카프리 주주들의 승인을 받아 2024년 완료될 전망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벌써 마이클 코어스가 코치의 성공 방정식을 전수받아 턴어라운드에 나설 수 있을지 흥분하고 있다.
진부한 브랜드로 낙인찍히면 다시 부활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패션업계에서, 바로 그 어려운 것을 해낸 코치이기 때문이다.
"코치는 제품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뿐만 아니라 적절한 전략을 통해 소비자의 관심을 끌어내고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특히 코치의 도매 유통 제한은 긍정적인 것으로 입증되었으며, 코치토피아 출시 등으로 Z세대의 호감을 사는 데도 성공했다. 마이클 코어스가 코치와 유사한 전략을 따른다면 지금보다 고급 시장으로 충분히 이동할 수 있다." (컨설팅 회사 JHA 애널리스트 제시카 라미레즈, 2023.8.10., 보그비즈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