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안거에 처음 참여하는 젊은 승려 K는 마음이 들떴다. ‘이번 하안거를 제대로 마치면 크게 성장하리라.’
100여명의 스님이 하안거에 참여했는데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단순한 수사(修辭)로서의 고행(苦行)이 아닌 온 몸으로 감당해 내야 할 힘겨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하안거에 돌입한 지 얼마 안 돼 K는 해제(解制·안거를 푸는 것) 날짜만을 세고 있었다.
이제 한 달만 참으면 된다.
이제 20일만 참으면 된다.
이제 열흘만 참으면 된다.
이제 5일만 참으면 된다.
드디어 고대하던 마지막 날. 하안거를 주재하는 큰 스님이 승려들의 열기로 뜨거운 큰 방에 들어왔다.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다들 정말 잘 견뎌냈습니다.”
K는 부풀어 오르는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뿌듯했다. ‘그래, 나도 이제 하안거를 제대로 마친 진짜 스님이 된 거라고!’
이제 큰 스님의 해제 선언만 남았다. 큰 스님은 좌중을 둘러보고 만면에 웃음을 띠며 말을 이어갔다. “이번 하안거는 참가하신 분들의 호응도가 뜨거워서 큰 깨달음을 얻은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 열기를 조금 더 이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하안거를 3일만 더 추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뭐라고? 3일 더 한다고?’ K는 머리가 하얘졌다. 욕이 치밀어 올랐다. ‘약속이 틀리잖아? 이런 법이 어디 있어?' K는 당장 큰 스님에게 뛰어들어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다른 스님들은 다시금 눈을 감고 참선을 계속 이어갔다. K의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
세 시간쯤 지났을 때 큰 스님이 다시 들어왔다. “자, 이 시간부로 하안거를 마칩니다.” K는 어리둥절했다.
“아까 제가 하안거를 3일 정도 더 하자고 했을 때 울화와 번뇌로 고민하던 분이 계시더군요. 3달간의 그 치열했던 하안거를 견뎌냈으면서도 한마디 말로 인해 그 숭고했던 마음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느꼈을 겁니다. 깨달음은 그와 같은 겁니다. 언제든 다시 원상회복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이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K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K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많은 스님들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K에게 합장했다.
K는 부끄러웠다. 왜 그토록 격렬하게 마음이 흔들렸던가? 하안거를 내 성장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생각보다 하안거 달성을 하나의 성과로 포장해서 남들에게 과시하겠다는 얄팍한 계산과 허영이 더 큰 동기였기 때문이리라. 하안거 못지않게 방금 마지막 3시간 동안 큰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았다.
이 법문은 마음을 건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깨달음이 순간적인 유혹에 얼마나 쉽게 흩어질 수 있는지 비유적으로 깨우쳐주는 이야기라 오래 기억에 남았나 봅니다.
힘든 시간도 삶입니다. 그 시간을 제대로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려고, 그냥 후다닥 지나쳐 버리려고만 한다면 삶은 작은 하나의 타격에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모든 순간에 오롯이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