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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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안거(夏安居). 음력 4월 보름 다음날부터 7월 보름까지 3개월 동안 한 곳에 머물면서 좌선과 수행에 전념하는 스님들의 수행법입니다. 제가 예전에 어느 절의 주지스님에게 들었던 법문 내용을 재구성해봤습니다.

하안거에 처음 참여하는 젊은 승려 K는 마음이 들떴다. ‘이번 하안거를 제대로 마치면 크게 성장하리라.’

100여명의 스님이 하안거에 참여했는데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단순한 수사(修辭)로서의 고행(苦行)이 아닌 온 몸으로 감당해 내야 할 힘겨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하안거에 돌입한 지 얼마 안 돼 K는 해제(解制·안거를 푸는 것) 날짜만을 세고 있었다.

이제 한 달만 참으면 된다.
이제 20일만 참으면 된다.
이제 열흘만 참으면 된다.
이제 5일만 참으면 된다.

드디어 고대하던 마지막 날. 하안거를 주재하는 큰 스님이 승려들의 열기로 뜨거운 큰 방에 들어왔다.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다들 정말 잘 견뎌냈습니다.”

K는 부풀어 오르는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뿌듯했다. ‘그래, 나도 이제 하안거를 제대로 마친 진짜 스님이 된 거라고!’

이제 큰 스님의 해제 선언만 남았다. 큰 스님은 좌중을 둘러보고 만면에 웃음을 띠며 말을 이어갔다. “이번 하안거는 참가하신 분들의 호응도가 뜨거워서 큰 깨달음을 얻은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 열기를 조금 더 이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하안거를 3일만 더 추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뭐라고? 3일 더 한다고?’ K는 머리가 하얘졌다. 욕이 치밀어 올랐다. ‘약속이 틀리잖아? 이런 법이 어디 있어?' K는 당장 큰 스님에게 뛰어들어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다른 스님들은 다시금 눈을 감고 참선을 계속 이어갔다. K의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

세 시간쯤 지났을 때 큰 스님이 다시 들어왔다. “자, 이 시간부로 하안거를 마칩니다.” K는 어리둥절했다.

“아까 제가 하안거를 3일 정도 더 하자고 했을 때 울화와 번뇌로 고민하던 분이 계시더군요. 3달간의 그 치열했던 하안거를 견뎌냈으면서도 한마디 말로 인해 그 숭고했던 마음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느꼈을 겁니다. 깨달음은 그와 같은 겁니다. 언제든 다시 원상회복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이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K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K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많은 스님들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K에게 합장했다.

K는 부끄러웠다. 왜 그토록 격렬하게 마음이 흔들렸던가? 하안거를 내 성장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생각보다 하안거 달성을 하나의 성과로 포장해서 남들에게 과시하겠다는 얄팍한 계산과 허영이 더 큰 동기였기 때문이리라. 하안거 못지않게 방금 마지막 3시간 동안 큰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았다.

이 법문은 마음을 건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깨달음이 순간적인 유혹에 얼마나 쉽게 흩어질 수 있는지 비유적으로 깨우쳐주는 이야기라 오래 기억에 남았나 봅니다.

힘든 시간도 삶입니다. 그 시간을 제대로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려고, 그냥 후다닥 지나쳐 버리려고만 한다면 삶은 작은 하나의 타격에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모든 순간에 오롯이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