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시간의 법칙, 최소 10년의 노력, 계단식 성장… 일정한 수준의 기술과 전문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많은 훈련의 시간을 축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악기를 익히거나 운동을 할 때 심지어 요리나 독서 등에서도 폭발적으로 기량이 향상하는 순간을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봤을 것이다. 조직 생활 역시 1년차보다는 10년차가 평균적으로 더 능숙하게 같은 일을 처리할 것이다.
그런데 아이디어와 영감이 좌우하는 창조와 혁신이라는 분야에서도 이 ‘양질 전환’의 법칙을 적용할 수 있을까? 100개의 그저 그런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사람과 한두 개의 뛰어난 아이디어에 집중하려는 직원 중 누가 혁신을 이끌어 낼 가능성이 많을까.
예술이나 학문의 경우 양과 질은 비례관계에 있다거나 그 반대라고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 예술적 평가는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다작의 예술가와 일생일대의 한두 작품만을 남긴 작가들 중 누가 더 높은 예술적인 성취를 이뤘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할수 있을까.
작가들로선 창작의 ‘스타일’이라 할 수 있고 팬들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그 결과를 판단할 것이다. 게다가 ‘시간×노력=발전’의 정도를 기대할 수 있는 ‘기술’과는 달리 예술은 데뷔작이 작가의 최고작이 될 수도 있고 이후 평생 졸작만을 만들 수도 있다. 시간과 경험의 축적이 예술적 성취와 비례하지 않는다.
60여편의 장편과 단편 200여편을 쓴 다작 분야의 대가 스티븐 킹이라면 이 부분에 대해 말 할 자격이 있다. 그는 2015년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수많은 졸작을 남긴 다작 작가들, 다작이지만 그 중에서 걸작을 남긴 알렉상드르 뒤마(삼총사, 몬테 크리스토 백작 등 소설, 여행기 257편과 희곡 25편), 애거서 크리스티(장편만 91편), 아이작 아시모프(총 500권), 조이스 캐럴 오츠(장단편 60편 이상), 필립 로스(장편만 31편) 등의 예를 든 뒤 결론을 이렇게 말했다.
“양이 질을 ‘보장’한다고 말하면 제정신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양의 창작이 ‘결코 좋은 질을 낳을 수 없다’라고 한다면 그건 속물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
인풋과 아웃풋으로 효율성의 결과를 판단하는 비즈니스의 혁신 측면에서 보면 어떨까. 지난해 ‘아이디어플로우(Ideaflow)’라는 베스트셀러 책을 낸 스탠퍼드 대학교의 제레미 유틀리 교수와 페리 클레반 교수가 포브스지와의 인터뷰(2022.12)에서 예로 든 이 사례는 이미 유명하다.
플로리다 대학교의 사진학과 교수인 제리 우엘스만은 학생들을 반으로 나누어 한 반에는 "A를 받을 수 있는 단 한 장의 뛰어난 사진을 제출하라“고 했고 다른 반에게는 “작품의 양에 따라 평가한다. 100장 이상을 제출하면 아무리 나쁜 사진이라도 A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결과는 한 장의 사진을 낸 반은 한명도 A를 받지 못했고 뒷반에서는 오히려 A 수준의 사진이 상당수 나왔다. 즉 훌륭한 수준의 작품을 제작하려면 많은 양의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두 교수는 “혁신가들은 결과물 즉 품질에 집착하는 대신 아이디어의 양을 창출하는 데 집중한다”고 말한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진정한 혁신 기업의 5가지 요건"이라는 글에서 경영 컨설턴트 개리 해멀과 시카코대 교수 낸시 테넌트도 결과물만 볼 것이 아니라 혁신에 투입된 원시 아이디어의 총량과 시간등을 함께 추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혁신적인 사상가와 예술가들을 평생 연구한 창조성 연구 분야의 대가 딘 시몬튼 박사 역시 분야를 막론하고 아이디어의 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아이디어의 양이라고 말한다.
그는 ‘확률’이라는 말로 이 상관관계를 설명한다. 즉 천재들이 같은 분야의 사람들과 같은 수의 작품을 만들 경우 질적으로 뛰어난 작품을 내는 비율이 높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천재들이 훨씬 많은 수의 작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그 중에서 걸작이 될 ‘확률’이 높아 질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디어의 총수를 늘리면 성공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할 확률도 높아진다.
심리학자 애론 코즈벨트가 모차르트 베토벤 바흐 등 클래식 음악 1만5000여곡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특히 5년의 일정한 기간동안 작곡한 작품의 수가 많을 수록 음악가가 걸작을 작곡할 확률이 높아졌다.
그런데 왜 베토벤, 모차르트같은 위대한 작곡가들 역시 걸작을 남기는 일이 확률 게임이 될 수 밖에 없을까. 데뷔작을 최고작으로 남긴 영화감독들이 왜 이후 작품에서 무너지곤 할까. 거장의 단계에 오르고 나면 안목이 생겨서 실패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시몬튼과 코즈벨트는 거장들이라도 자신의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을지 여부를 정확하게 판단 할 수 없다고 분석한다. 베토벤조차도 70편중 자신이 좋은 평가를 받으리라고 생각한 작품 15개는 부정적 평가를 받았고 8개 작품은 그 반대였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79개의 스케치 이후에 탄생한 작품인데 결국 채택된 이미지들은 초반에 그린 스케치에서 더 많이 채택됐다.
대가들도 무엇이 걸작이 될지 졸작이 될지 미리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애덤 그랜트의 <오리지널스>). 그리고 유명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는 “어떤 예술가든 가장 중요한 작품 4개만 빼고 모든 작품을 파괴해도 그 예술가의 명성은 그 4개를 바탕으로 계속 유지될 것”이며 “예술가의 통찰력이 온전히 펼쳐지는 그 몇 번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영감의 수준이 높지 않다“라고 냉정하게 말한다(이안 로버트슨).
이런 사례들은 일종의 안도감을 우리에게 준다고도 할 수 있다. 무엇이 걸작이 될지는 역사적인 거장들도 알 수 없고, 위대한 예술가도 후대에 손꼽을 만한 작품은 극소수로 남기며, 엄청나게 많은 양을 생산해 우수한 품질을 낳을 확률에 의존해야 하는 것은 평범한 우리와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혁신적인 팀의 훌륭한 리더라면 팀원들에게 ”좋은 아이디어를 내야한다“라고 하기 보다는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를 창출했는가”를 묻고 더 자유롭게 아이디어들을 쏟아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물론 쏟아내는 아이디어를 정확한 피드백을 통해 혁신의 아이디어로 이끌 수 있는 확률을 끌어올릴 프로세스와 지표를 지속적으로 개선해 내는 것 역시 앞에서 나왔던 전문가들이 반드시 강조하는 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100개의 아이디어중에서 몇 개가 성공할지 그 확률의 정확한 숫자 역시 그 프로세스를 다 지나기 전까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러니 ‘양으로 승부’해봐야 한다.
<오리지널스>에서 애덤그랜트가 인용한 딘 케이먼의 말을 새겨둘만하다. “수없이 많은 개구리에게 입맞춤을 해봐야, 그중에 왕자를 하나 찾아낼 수 있다”. 케이먼은 440개의 특허를 냈던 발명가로 개인 이동장치 세그웨이를 만든 사람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쉬지 않고 창조적일 수는 없지 않냐’고 말하고 싶은 사람에게 스티븐 킹은 좀 더 싸늘하게 말한다. “왜 공백기를 갖지 않고 쓰냐고요? 창조적 불꽃은 어차피 죽음이 꺼뜨려 줄 테니까요. 말하자면, 셰익스피어는 현재 400년의 공백기를 가지고 있군요“. 내 인생의 긴 공백기가 오기전에 더 많은 개구리에게 입을 맞춰 볼 필요가 있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