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머니투데이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창작은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 아닌 것이 되었다. 그러나 창작이라는 ‘작업’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라면, 창작의 원천인 상상력은 인간의 머릿속에서 제각각의 방향으로 무한대로 뻗어나갈 수 있는 영역이다(고 아직은 믿고 싶다). 그래서 지금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상상력의 품질이다. 지금껏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했던 나만의 독창적인 상상력이 더 필요한 시대다.


상상력에 관해서라면 이 사람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1993년 <개미> 이후 올해로 벌써 30년째 꾸준히 작품을 내놓으며 특히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가다. 그의 문학적 성취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릴 수 있겠지만 그가 탁월한 상상력의 소유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순 없다. 개미와 고양이, 천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내면의 세계와 영계, 우주, 잠의 세계까지, 경계와 시공간을 넘나들며 탐험하는 그의 상상력은 한계가 없다.


AI가 내 다음 소설을 쓸 순 없다. 옛날 작품을 흉내 낼 수는 있어도.


그는 인간만의 창의력을 위협받는 이 시대에도 “AI는 내 기존 작품을 흉내 낼 수는 있겠지만 내 다음 작품을 쓸 수는 없다”고 자신감을 내비친다. “AI는 이미 존재한 작품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창조합니다. 소설가의 직업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걸 다루는 일입니다. 세상 어떤 AI도 제가 다음에 뭘 쓸지는 몰라요. AI는 우리를 더 창의적으로 만들 겁니다. 더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이야기만 살아남겠죠.” (‘톱클래스’ 2023.8월호)


관찰은 ‘이해’가 아니다. -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목표다.


“나는 수 벼룩 아빠와 암 벼룩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벼룩이다”. 그가 8살 때 쓴 학교의 작문 숙제 첫문장이다.(<베르베르씨 오늘은 뭘 쓰세요?>, 2023) 벼룩의 1인칭 시점, 즉 벼룩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여기에 그의 30년 작가 생활을 관통하는 상상력의 근간이 있다. 개미와 고양이와 벌꿀, 무엇이 주인공이 되었든 그것에 대한 관찰은 기본이다. 그렇지만 그는 단지 뚫어지게 바라만 보는 관찰이 아니라 그것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의 두뇌로 생각하는 경지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말한다.


출처=이미지투데이



“사람들은 동물을 좋아하면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진정 그 동물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해요. <고양이>(2016)를 쓰기 전 고양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고양이는 닫힌 문을 싫어합니다. 또 배가 고플 때 밥그릇이 비어있는 걸 싫어해요. 개나 고양이를 키운다면 한번 해보세요. 눈을 감고 내가 그들의 정신 속으로 들어간다고 상상해보는 거에요.”(출처=세바시 강연-‘창의적인 글쓰기의 비법’) 고양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시작하니 ‘고양이처럼 척추가 더 유연해지고 균형감각이 뛰어나고 귀를 움직일 수 있다면, 깜깜한 곳에서도 잘 볼 수 있다면 우리 눈에는 어떤 것이 보일까?’ 하는 질문들이 계속 생겨나고 그것만으로도 책 한권을 채우고도 남을 상상력이 샘솟는다는 것이다.


의도된 공감, 세심한 내면의 공감에서 상상력이 피어난다.


상상력을 얻기 위한 관찰은 외형적, 신체적인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높이 사는 고양이만의 능력이 또 있습니다. 행복해지는 능력. 고양이는 여유롭고 늑장을 부리죠. 기분 좋을 만한 곳을 찾아가 자리를 잡고 끊임없이 파동을 주고 받는 것 같아요. 인간은 그렇지 않죠. 의자가 있으면 앉고 책상이 있으면 일을 합니다. 그래서 저도 바뀌었어요. 어딜 가든 그 공간에서 가장 좋은 에너지가 나오는지 찾아보게 됐어요. 또 고양이는 내가 아플 때 내 배 위에 누워서 갸르릉거립니다. 이기적인 동물이 아니라는 증거에요. 자기만의 방식으로 위하는 겁니다. 이 모든 것이 소설가가 되기 전에는 신경 쓴 적 없는 디테일이에요. 세심한 소설가는 주변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공감에 도달하기 위해서 애씁니다. 그 공감이 제 창의성의 원천입니다.”



출처=이미지투데이



그는 이런 ‘의도된 공감’을 물고기에게도, 나무에게도, 식당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도 적용한다. “나무라면 빛을 어떻게 느낄지, 뿌리는 땅에서 어떤 감촉과 축축함을 느낄지, 혹은 식당의 저 사람은 지금 행복한지 건강한지 그 삶은 어땠을지...” 그런 지극한 관찰과 추리를 반복하며 대상에 진정 한발짝 다가가며 공감하는 순간 자신에게 있는 줄 몰랐던 새 감각이 느껴지고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는 것이다.


공감하려면 나를 열어야 한다.


공감은 관심에서 출발한다. 관심이 없다면 관찰할 수 없고 공감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르베르는 “창의성의 반대는 자기 세계에만 갇히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창의적이기 바란다면 타인에 대한 관심부터 가지세요. 타인에게 다가가고 몸을 움직여 외부 세계를 돌아다니고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세계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주변을 관심 있게 바라보고 관찰하면 굉장한 발견을 할 수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외부와 공감하고 흘러 들어오는 정보를 내 안으로 들여보내는 것. 예술가는 자신을 외부에 접속하는 샤먼같은 존재에요. 나와는 다른 누군가의 정신에 나를 투영하는 거죠. 이게 내 작업의 핵심입니다. 타인에게 나를 열어놓는 것 말이에요.”


나를 비워 외부 세계를 내안으로 들이기 – 사고의 확장이 상상력이다.


출처=이미지투데이



소설 <고양이>의 첫 부분에서 고양이는 정신을 끝없이 확장하려는 노력 끝에 주변의 고양이는 물론 쥐와 다른 동물과도 소통이 가능한 상태에 이른다. 세상에 대한 엄청난 감응력을 가지며 자신의 세계와 능력을 확장한 것이다. 이것은 베르베르가 말하는 상상력의 최종적 결과물 혹은 핵심적 비결이라 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세심한 관찰, 관점 바꾸기, 공감하기란 나의 한계에서 벗어나 자신을 활짝 여는 것에서 시작하고, 텅 비운 정신으로 외부에 자신을 활짝 열면 익숙하지 않은 세상 속으로 정신을 확장 시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상상력이다. “그런 상상을 하다 보면 내가 더 열리는 것을 느낍니다. 이런 상상을 하지 못한다면 나라는 존재는 현재의 나에게만 한정된 채로 남게 됩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미래에 중요하게 작용할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내 한계를 돌파해내는 호기심 가지기.


결국 그가 일상에서 강조하는 것은 ‘나의 한계를 돌파해내는 호기심 가지기’다. 상상력이란 내 사고의 한계로는 해낼 수 없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고 없는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틀 안에서만 자신의 능력을 한정 짓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나의 직업과 나이 성별 외모 이런 것이 여러분을 정의하도록 한다면 나라는 존재를 제한하는 거예요. 그 대신 나를 활짝 열고 나를 비워 텅 빈 상태로 만들어 외부의 에너지로 채우는 사고 실험을 해보았으면 좋겠어요. 눈을 감고 내 반려동물이, 내 주변 사물들의 생각이 그 빈 공간으로 저절로 흘러들어오게 하는 거예요.” 창조와 혁신의 필요조건인 새로운 상상력과 호기심이 들어서기 위해서는 내 정신의 빈 공간을 만들어 두기. 무엇으로 정의되기 위해 내 안을 꼭꼭 채우기만 하려 했던 사람이라면 새겨둘 만한 말이다.